채희태
채희태 · 낭만백수를 꿈꾸는 교육사회학도
2023/09/23
※ ZD넷 코리아에 칼럼으로 연재했던 글입니다

몇 년 전부터 ‘리더십’ 앞에 ‘디지털’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리더십’과 ‘디지털 리더십’은 어떻게 다를까? 그리고 리더십 앞에 디지털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어떠한 개념 앞에 수식어를 더하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이다. 하나는 목표인 긍정이고, 다른 하나는 수단인 보완이다. 익숙한 예를 몇 가지 들어 보자. 대표적으로 ‘사회적 기업'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기업을 빼놓고 자본주의 경제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경제 질서에서 기업은 이윤 창출을 통해 생존하거나 성장하며, 동시에 기술 혁신,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사회에 기여한다. 하지만 세계화와 무한 경쟁 속에서 기업들이 생존을 위한 이윤 추구에 몰입하게 되면서 기업이 지향해야 할 가치의 한 축인 사회적 기여가 무너져 내렸다. 시장을 포함하고 있는 사회 기반이 무너져 버리면 그 위에서 추구하는 이윤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사회적이라는 가치를 밖으로 끄집어내 기업을 수식하게 함으로써 기업의 긍정성을 되찾고자 한 것이 ‘사회적 기업’이 등장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 보자. 지금은 웹툰의 성장으로 한풀 기세가 꺾이기는 했지만, ‘학습 만화’라는 것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에서 만화 산업은 아마 소멸했을지도 모른다. 프랑스에서는 만화를 건축, 조각, 회화, 음악, 문학, 공연, 영화, 사진에 이어 아홉 번째 예술 매체로 인정하고 있지만(열 번째는 게임이다), 우리나라에서 만화는 일찍부터 아이들의 공부를 방해하는 불량한 매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의 눈치를 보며 만화 대본소를 기웃거렸던 지금의 기성세대는 부모가 된 후 자신의 부모보다 더 강력하게 만화를 금지했다. 사실 학습이라는 수식어 또한 이미 만화 안에 내재되어 있던 가치였다. 만약 학습이라는 수식어가 만화를 보완하면서 긍정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 웹툰이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을까?

디지털 리더십의 등장

리더십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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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백수를 꿈꾸는 프리랜서 콘텐츠, 정책 기획자, 사회 현상의 본질을 넘어 그 이면에 주목하고 싶은 兩是論者. <백수가 과로에 시달리는 이유> 저자. ZDNET 코리아에 칼럼 "IT는 포스트노멀 시대의 나침반이 될 수 있을까" 연재. 공주대학교 평생교육 박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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