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중일기] 선상의 달리기
2024/01/22
선상에서 나를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해 주는 세 가지가 있다.
문학, 맥주, 그리고 달리기. 다시 생각해 보니 매일 무너져 있는 상태이지만, 이 세 가지가 무너진 내 멱살을 끌고 전진해주고 있다.
달리기를 좋아하게 된 지는 세 달 밖에 되지 않았다. 뭍에서 한 달 반, 바다에서 한 달 반.
작년 8월에 철인 3종 경기 하프코스를 완주하였고, 10월에는 마라톤을 얕보고 두 번 연습 후 참가했다가 보기 좋게 컷오프 당했다. 컷오프 당한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11월의 마라톤을 신청하였고 매일 달렸다. 11월의 리벤지 매치에서 복수에 성공하였고 그 과정에서 달리기와 사랑에 빠졌다.
달리기의 매력은 역시 언제 어디서나 아무 준비나 생각 없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곳이 비록 선상에서 일지라도.
배에도 체육관이 있다. 다만 배의 수명만큼이나 기구들도 낡았다. 두 대 있는 러닝 머신 중 한 대는 고장 났고 나머지 한 대도 온전치 않다.
트레일의 접지가 좋지 않아 속도가 때때로 빨라지거나 느려진다. 가운데서 뛰면 어느 정도 갑작스러운 속도 변화를 컨트롤할 수 있을 테지만, 가운데서 뛰면 달리는 소리가 영화관에서 뛰어다니는 티라노사우르스 마냥 체육관이 있는 A데크에 크게 울려 퍼진다. 최대한 뒤쪽에서 사뿐사뿐 뛰어야 하는데 갑자기 속도가 빨라지면 러닝머신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몇 번 떨어진 적 있는데 다행히도 아직 다친 적은 없다.
선상에서 처음 달리기 시작했을 때, 직선으로 뛰어도 배에서의 롤링 때문에 몸이 좌우로 움직였다. 롤링이 심할 때는 좌우로 움직여지며 옆의 팔걸이에 부딪히고는 했다. 지금은 적응하여 롤링의 패턴의 파악해 좌측 대각선으로 그리고 우측 대각선으로 달리며 팔걸이에 부딪히지 않게 되었다.
삼 주를 체육관에서 달렸을 때 즈음 갑판부 선배에게 주말에는 갑판을 달려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평일이면 주말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육지에서 주일에 성당에서 T자매를 보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의 크기만큼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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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를 당했고 그 피눈물 나는 820일의 기록을 책으로 적었습니다.
그 책의 목소리가 붕괴돼버린 전셋법 개정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길 바랍니다.
그 후, 꿈을 이루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배를 탔고 선상에서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