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풍경 - 총검

이재문
이재문 · 역사와 축구에 관심이 많습니다.
2023/10/05
임진왜란 이후 조선군의 제식 무기는 조총이 됩니다. 
하지만 삼수병제에서 엿볼 수 있듯이 조총수는 사수(궁수)와 살수(창검을 다루는 병사)의 보조가 필요했죠. 
바로 숙련된 사수라도 30초 정도 걸리는 재장전 시간 때문입니다. 
성인남자가 아무리 느려도 100m를 20초 정도에 뛸 수 있다는 것과 
조총 유효사거리가 50m 미만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조총수는 "한 번 사격 후 무장해제"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병자호란 때 청군은 산악에서 진지를 구축한 조선군의 조총 세례를 뚫고 수십배의 조선군을 섬멸했습니다. 
물론 진눈개비 때문에 화승총의 불발률이 높았고 
조선군 대부분이 농민병이라 사격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도 패배의 원인이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이 고안되었습니다. 
그리고 군사 기술이 가장 빨리 발달하고 있던 유럽에서 해답이 나왔습니다.
(유럽은 오랫동안 만성적인 전쟁 상태였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죠.)
 
사격 후 무장해제되는 문제는 빈 총을 무기화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총신에 도끼머리를 끼워 도끼처럼 휘두르는 것도 있었고 
손잡이에 총신과 평행하게 칼날을 같이 끼운 것도 있었습니다. 
(이건 총에 칼을 끼웠다기 보다는 칼에 권총을 끼운 듯한 생김새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잠시 시도되다가 사라졌습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이자 오늘날에도 쓰이는 방법은 바로 총검입니다.
 
총검은 17세기 초 프랑스 남부 Bayonne[바이욘ㄴ])에서 개발되었기에 
baïonnette(프) / bayonnet(영)[바이요네ㄸ]라고 불립니다.
 
초기 총검은 총신에 칼을 꽂는 방식이었기에 착검시 사격이 불가능했지만 
총신 옆에 검을 다는 식으로 개량되면서 그런 문제점은 사라졌죠. 
소총수들의 "사격 후 무장해제"라는 문제점이 사라지며 효율성이 극대화됩니다.
 착검한 소총수들은 "사격 후 무장해제"가 아니라 "사격 후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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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크 재활병원 출신 현 개원 한의사 취미는 역사와 축구입니다. 건강 관련 의학상식이나 혹은 제가 취미로 다루는 분야의 얇팍한(?) 지식들을 아마추어 수준에서 가볍게 읽을 수 있게 정리하는 글들을 써볼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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