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것

핵추남
핵추남 · 성실한 희사원
2024/04/20
조기현 작가의 '새파란 돌봄'을 보다 보니
처음엔 나와 거리가 먼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보니 단지 정도의 차이일 뿐 바로 내 지척의 거리에 있는 이야기였다.

당장 나의 여동생은 곧 있으면 아흔이 되는 할머니와 둘이 산다.
글에 나오는 '영케어'가 바로 내 옆에 있었다.
나의 할머니는 병환이 깊어 종일 누워있어야 하는 그런 상황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건 지근에 누군가가 모니터링을 해야 할 터, 이 또한 '돌봄'이다.
동생이 할머니가 좋아서 함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의 할머니지만 같이 오랜 시간 있기는 쉽지 않기로는 대한민국 탑 클래스다.
내가 결혼을 하고 분가를 하면서 3대가 함께 살던 정상가족에 금이 갔고 30년 넘게 시어머니를 모시고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던 어머니의 독립을 위해 여동생이 나서서 자신이 같이 할머니와 있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 여동생도 곧 결혼을 하려 하는데 그 결정에 고민을 하게 만든 것이 다름 아니라 ‘할머니'란 존재였다.  고모 둘도 사정이 괜찮진 않고 작은 아버지는 지구 반대편으로 간지 오래다. 1세대의 돌봄을 2세대가 온전히 하지 못하는 상황. 그래서 3세대에 '가족'이라는 미명하에 전가하려는. 이른바 '형제 리스크' 다.

나에겐 씨알도 안 먹힐 일이라 생각했는지 유럽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사촌동생에게 아버지는 할머니와 함께 살 것을 권해 본다. 어떻게 꾸며도 어른들의 이기적이고 치사한 행위다.
그렇다고 가정에 방문하는 요양보호사 서비스를 받으려는 할머니가 아니다. 그것이 본인의 자존심에 금이 간다고 생각하나 보다. 스스로가 '늙고 쓸모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라 여기는 것 같다.

위의 사례에서 국가와 사회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왜 '돌봄'을 받는 것이 스스로를 '무기력'하다고 여기게 되는가?

결혼을 하고 분가를 해도 부모님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빚지고 시작한 결혼생활이지만 그래도 벌이는 젊은 우리가 낫기에 부모들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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