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in 고전] 남성 통치자 앞에서 정치적인 언어로 맞서는 여성을 선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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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4

[문학 속 한 장면] 소포클레스 作, <안티고네>②

지난 글에서 살폈듯 비극 <안티고네>의 주요 갈등은 안티고네의 오라비 폴뤼네이케스의 매장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다. 크레온 왕은 왕권을 둘러싼 내전에서 다른 나라의 군대를 끌어들인 폴뤼네이케스를 반역자로 규정하고 그의 매장을 금지한다. 안티고네는 혈연을 내세워 크레온의 명령을 어기고 오라비를 매장한다. 크레온은 안티고네를 동굴에 가두라고 명한다.

‘안티고네의 주장’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독자들의 눈에 안티고네는 어떤 인물로 보일지 궁금하다. 어쩌면 안티고네는 국가 공동체의 문제는 외면하고 사적인 입장만을 강조하는 인물로 보일 수도 있다. 또한 오라비 매장 문제를 우선시하느라 살아 있는 가족인 여동생 이스메네나 약혼자 하이몬은 외면하기도 한다. 자기주장, 자기 명분만을 앞세우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저버리고 스스로 고립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한편, 통치자 크레온의 입장을 고려해볼 필요도 있다. 막 내전이 끝나고 도시가 위기 상황에서 벗어났는데 바깥 세력을 끌어들여 도시를 공격한 자를 왕족이고 안티고네의 친족이라는 이유로 공식적 장례를 치르는 것은 통치자로서 현명하지 못한 일,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생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안티고네>는 정치철학의 맥락에서 자주 인용·해석되어 왔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철학자 헤겔의 해석이다. <정신현상학>에서 헤겔은 두 인물의 입장은 모두 정당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안티고네가 오라비를 매장하는 건 여성이자 가족으로서 당연한 행동이지만, 공동체의 안녕을 보장하고 공동체를 정부의 형태로 유지하는 게 중요한 남성 통치자 크레온의 입장에서는 반역자의 매장을 금지하는 게 타당하며 안티고네의 주장 역시 사적인 것이기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안티고네>의 갈등은 나름의 정당성이 있는 선한 힘들 사이의 갈등인데, 이 비극에서 그러한 갈등은 양쪽이 모두 몰락함으로써 해소된다는 것이 헤겔의 설명이다. 두 인물은 각자 자기의 법칙과 가치만을 정당화하면서 다른 쪽의 법칙은 무시하고 배척하는데, 실은 상대방의 법칙이 자신이 주장하는 법칙에 내재되어 있는 것을 모른다. 그렇기에 두 인물은 갈등 끝에 몰락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몰락을 통해 그들이 주장한 일면적 권리는 지양되며 갈등이 해소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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