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내가 없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권영민 · 철학연구자
2023/05/05
내맘상담소

Question.
육아 외에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내가 없어지는 느낌이고, 뒤쳐지는 느낌인데 또 뭔가 다른 걸 하자니 제가 금방 지쳐요. 시간도 체력도 너무 제한적이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요. 저는 대체 뭘 해야 하는 걸까요? 아니 뭘 할 수 있을까요?
 
Answer.
 주신 질문을 몇 번을 읽어보았습니다. 답답한 마음, 절박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써주신 질문만으로는 질문 주신 분의 사정을 다 알기는 어렵지만, 내 삶이 육아에 포박 당했다고 느낄 때 숨막히는 기분, 육아에 집중하면 할수록 느껴지는 불안감이 제게도 전해졌습니다.
 
삼촌 같은 아빠?

 솔직히 말하면 저도 제 아이를 키우며 비슷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아이가 세 살일 때 제 파트너는 미국에 공부를 하러 떠났습니다. 그 때문에 저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시기가 있었어요. 저는 그 전까지도 아빠로서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려 노력하는 아빠였다고 생각했는데요,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저는 이전까지의 제 육아는 마치 삼촌이 조카와 놀아주는 수준에 불과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육아를 전담하기 시작하면서 육아는 제 삶의 질서를 바꾸는 일임을 알게 되었어요. 아이는 더 이상 제가 ‘삼촌 같은 아빠’로 남아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제 시간과 계획, 몸과 마음 모두의 주도권을 내놓길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아이 엄마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는 이런 요구는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쓰던 논문을 중단해야 했고, 이후의 진로도 불투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아이를 두고 미국으로 떠난 파트너가 삶의 주도권을 회복했을까요?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이의 틱증상이 심해지면서 결국 공부를 중단하고 돌아와야 했지요.

 그 때 제가 느꼈던 불안감과 무력감이 지금 질문해주신 분께서 느끼는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내 이름’이 아니라 ‘누구의 엄마’라는 것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 될 때부터, 어쩌면 내 삶을 움직이는 주도권이 아이에게 있게 됩니다. 한 때 누군가의 태양이었고, 중심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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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연구자 철학으로 육아와 미술, 세계를 들여다 보려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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