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 기고 , "우리 당당하게 투쟁해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인증된 계정 · 다른 시각을 권하는 불편한 매거진
2023/03/22
대규모 사회 투쟁은 결코 어떤 요구사항을 목소리 높여 요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삶을 변화시키기를 바라는 집단의 열망을 세상에 드러낸다. 사회 투쟁 참여자를 사로잡아 변화시킨다. 작가 에르노도 1995년 11~12월 시위 때 똑같은 경험을 했다.

 
<발 맞추어>, 2019 - 마릴린 캐빈

여느 때처럼 우리는 어떤 일이 다가오는지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자크 시라크가 ‘사회 격차’를 정조준하며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는 서민 우파를 구현했다. 적어도 자신을 지지하는 서민 유권자층에 관심을 기울였으니까. 현 정권이 추진 중인 연금개혁과 달리, 공공부문·민간부문 간 연금제도 단일화 등 다양한 개혁 내용이 담긴 1995년 사회보장 개혁은 사전 발표나 공론 과정이 생략됐었다. 1995년 11월, 정부의 개혁안이 별안간 날벼락처럼 날아들었고, 우리가 사태를 파악하기까지 잠시 시간이 필요했다.

다만 분명했던 것은 당시 개혁안의 설계자인 알랭 쥐페 총리의 거만함이었다. 모든 것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보이는 교만함, 그래서 그의 말을 듣고 있자면 마치 우리 모두가 어리석은 민중이 된 듯한 수치심에 잠기게 되는 그런 교만함 말이다. 당시 우리가 가장 용납하기 어려웠던 점이 바로 그 교만함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무엇보다 일단 당당하게 고개를 들 필요가 있었다.



대규모 파업, 새로운 역사를 쓴 진귀한 순간

1995년 11월 24일, 쥐페의 개혁안에 맞선 모든 공공부문이 결집한 대규모 파업이 시작됐다. 철도도, 지하철도, 우체국도, 학교도, 모두 문을 닫았다. 매서운 추위가 맹위를 떨쳤다. 당시 나는 새로운 역사가 쓰이는 매우 진귀한 순간을 함께 하고 있다는 막연한 흥분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난다. 이번만은 노동자가 역사의 주역이었다. 한 주 동안 우리가 마침내 혁명 전야를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한 이가, 나 혼자는 아니었으리라. 1968년 5월 혁명과 달리, 이번에는 모든 시민이 한마음으로 파업을 지지했다. 파업을 하지 않는 민간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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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르몽드의 대표적인 자매지로 약칭은 "르 디플로"입니다. 국제뉴스를 다루는 월간지로 30개 언어로 51개 국제판이 발행되고 있다. 조르조 아감벤, 아니 에르노,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피에르 부르디외 등 세계적 석학들이 즐겨 기고했으며, 국내에서는 한국어판이 2008년10월부터 발행되어 우리 사회에 비판적인 지적 담론의 장으로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일컬어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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