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in 고전] 펜을 배우자로 삼고, 글을 가족으로 삼는 여성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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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7
[문학 속 한 장면] 루이자 메이 올콧 作, <작은 아씨들>②

이전 글에서 소설 속 장면들을 통해 <작은 아씨들>이 겉보기와 달리 가부장제를 풍자하고 여성의 독립성을 적극 탐색하는 작품임을 살폈다. 아버지의 미약한 존재감, 어머니와 딸들 사이의 강한 유대, 여성의 활동에 대한 전폭적인 응원이 암시적으로 드러나는 소설 속 연극 장면 등이 그렇다.

하지만 <작은 아씨들>은 여전히 ‘착한 소녀들을 위한 소설’로 인식되고 읽힐 가능성이 높다. 올콧의 풍자들은 자세히 읽어야 보이며 신랄하지 않고 부드럽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이 착하다. 이 소설엔 오늘날 독자들이 기대하는, 가부장 질서를 통쾌하게 위반하고 뒤집는 악녀 캐릭터가 없다. 구성 역시 기존 세계관을 흔들 수 있을 만큼의 큰 질문을 던지는 인물의 활약이나 드라마틱한 사건 없이 소소한 일상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집안의 천사들,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다

또 한 가지, 독자들은 자매들의 활동반경이 좁다고 느낄 것이다. 자매들은 대체로 집안(가정 내)에 머물러 있고, 집밖에 나가더라도 이웃 마을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는 일 역시 집안 일 돕기나 가정교사, 보모에 그친다. 그러나 이는 여성에게 직업을 갖는 것도, 사회적 역할도 허락되지 않았던 당시 시대 상황을 감안해서 볼 문제다. 이 시기 여성에게 허락된 유일한 직업은 가정교사였고, 기대된 역할은 ‘집안의 천사’였다.

자매 중 셋째인 베스가 바로 ‘집안의 천사’ 캐릭터로, 다른 자매들이 다른 도시의 친척집을 방문하거나 가정교사로 일하거나 학교에 가는 것과 달리 베스는 소설 내내 집 안에 머문다. 이런 점에서 작가가 베스에게 부여한 운명은 곱씹어 볼만하다.

19세기 소설을 읽을 때, 여성인물의 활동반경이 점차 확장되는 것을 눈여겨보는 것도 흥미로운 읽기 방법이 될 것이다. 1800-1810년대 발표된 제인 오스틴 소설 속 인물들은 주로 집안에서 머문다. 하지만 1840년대의 제인 에어는 집을 박차고 나와 황야를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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