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살리는 옷장> : 지속 가능한 패션을 위한 고민
2023/10/07
내 옷장에는 요즘 물가로는 상상도 못할 가격의 옷들이 걸려 있다. 1천 원짜리 노란색 체크 남방, 3천 원짜리 하운드 체크무늬 블라우스, 두 장에 5천 원 주고 산 반팔 청남방과 여름용 레이어드 니트, 개당 5천 원에 구매한 연청 바지와 검은색 바탕에 화사한 플라워 패턴이 새겨진 오프숄더 원피스까지. 옷장의 70%가 독특하고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옷들로 채워져 있다. 엄마의 옷장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3천 원짜리 브이넥 시폰 플라워 패턴 티셔츠, 5천 원짜리 에스닉 패턴 블라우스, 5천 원짜리 가을 원피스 세 벌, 4천 원짜리 바지 등, 제일 비싼 옷이 1만 원을 넘지 않는다. 우리 모녀는 이렇게 좋은 옷을 어디서 구매했을까? 눈치 빠른 사람들은 알아챘겠지만, 이 옷들은 전부 부산 ‘남포동 구제 골목’에서 찾.아.냈.다.
골목 사이로 빽빽하게 들어선 빈티지샵은 엄마와 나의 보물창고다. 흔히 구제 옷은 날씬한 사람들만 이용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66~77사이즈를 입고, 엄마는 상의는 99, 하의는 88 사이즈를 입는다. 구제 옷에 악귀(?)의 영혼이 붙어 있다는 말에 겁먹을 필요도 없다. 원래 옷에는 사람의 혼이 깃들어 있다. 나쁜 혼이 스며들어 있어도 새 주인이 깨끗이 세탁한 후 햇볕에 바짝 말려서, 좋은 마음으로 잘 입고 다니면 부정한 기운은 사라진다. 매장에 디피된 신상품이 아니라고 해서 질 나쁘고 촌스러울 거라는 편견도 버리는 게 좋다. 옷 무더기 속에서 고른 한 벌은 명품보다 더 소중한 ‘생활 명품’(1)이 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제 골목을 누비다 보면, 꼭 미간 찌푸려지는 말을 한마디씩 엿듣게 된다. “나는 안 입고 말지 저런 옷은 안 사.”, “아무리 싸도 저런 데서는 절대 안 골라.” 글쎄, 과연 옷 한 벌에 숨은 잔혹사를 알고도 그리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매년 생산되는 옷은 1,000억 벌이며 이 가운데 800억 벌이 팔리고, 330억 벌이 버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