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야망은 원대했지만 현실은 보잘것없었다.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뒤섞여 늘 계획이 어긋났다. 세상 모든 양서를 섭렵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책장은 느리게 넘어갔다. 활자를 소화하는 속도가 더딘 만큼 글도 천천히 썼다.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읽고 또 읽을 때면 자괴감에 빠져 들었고, 글을 쓰다가 문장이 툭툭 끊길 때면 심히 절망했다. 필력은 고사하고 문장력조차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걸핏하면 미천한 재능을 탓했다.
‘더 늦기 전에 때려치우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러다 굶어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 시달리며 갈팡질팡했지만 이내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매일 잠들기 전에 머리 위로 ‘위대한 재능’이 강림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럼 그렇지, 하늘이 내 편 일리 없지! 신은 내 기도를 처참하게 짓밟고 외면했다. 최소 A4용지 5장 분량의 글을 1시간 이내로 마감하고 싶다는 욕망은 헛된 망상일 뿐이었다. 간혹 일필휘지로 휘갈기는 순간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