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똑같이 살 순 없잖아> : 그것대로 괜찮은 삶의 방식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11/03

스물셋, 야망은 원대했지만 현실은 보잘것없었다.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뒤섞여 늘 계획이 어긋났다. 세상 모든 양서를 섭렵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책장은 느리게 넘어갔다. 활자를 소화하는 속도가 더딘 만큼 글도 천천히 썼다.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읽고 또 읽을 때면 자괴감에 빠져 들었고, 글을 쓰다가 문장이 툭툭 끊길 때면 심히 절망했다. 필력은 고사하고 문장력조차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걸핏하면 미천한 재능을 탓했다. 

‘더 늦기 전에 때려치우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러다 굶어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 시달리며 갈팡질팡했지만 이내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매일 잠들기 전에 머리 위로 ‘위대한 재능’이 강림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럼 그렇지, 하늘이 내 편 일리 없지! 신은 내 기도를 처참하게 짓밟고 외면했다. 최소 A4용지 5장 분량의 글을 1시간 이내로 마감하고 싶다는 욕망은 헛된 망상일 뿐이었다. 간혹 일필휘지로 휘갈기는 순간이 있었지만, 결과물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고집을 내려놓고 현실을 직시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극히 평범했다. 너무 평범해서 시시할 정도로 평범했다. 그렇다고 나란 존재가 시시한 것은 아니었다. 놀랍게도 나는 평범함 속에서 ‘재능’의 진의를 발견했다.

몸이 천근만근인 날에도 읽고 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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