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지 않는 비행사와 쓰지 않는 소설가
중요한 것은 안창남이 점점 더 ‘일본화’되어가는 경성의 시가를 부감의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일본에서 비행술을 충분히 공부한 뒤 조선으로 돌아와 비행학교를 열겠다는 포부를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으며, 그의 재능과 열정에 감동된 명사ㆍ유지들이 후원회를 조직해 그에게 성능 좋은 새 비행기를 선사하려는 계획도 수립되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1924년 관동대진재로 인해 안창남이 교수로 몸담고 있던 오구리 비행학교가 전소되었고, 안창남 또한 한동안 적당한 직업을 찾지 못한 채 일본 각지를 떠돌아야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가 느꼈을 심적 갈등과 고뇌에 대해서는 여러 정황들을 바탕으로 감히 추측해보는 수밖에 없지만, 진재 직후 일본 각지에서 조선인들이 학살당하는 참상을 목도하며 일본에 대한 대항의식을 키워나갔으리라 짐작된다.
진재 이듬해인 1925년, 그는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무장투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