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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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영

book editor & writer

✒ <간밤의 꿈 이야기> <한국현대소설 이야기> <한국고전문학 이야기> <희망을 노래한 밥 말리> <한국 현대문학사를 보다> 등을 썼습니다. 📚 <독도박물관 이야기> <한국사를 보다> <서양미술사를 보다> <어떻게 놀아줘야 할까> 등 130여 종 편집에 참여했습니다.

경력
언론/출판 - 프리랜서
https://www.instagram.com/moonwalker_2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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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의 꿈 이야기 - '공포'

낯선 길을 걷고 있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이 이어지다가 금세 큰 빌딩들이 보이는 대로변이 나오기도 한다. 횡단보도를 건너 다시 빌딩 사이로 들어선 나는 약간 경사가 진 내리막길을 걷는다. 그때 내가 막 지나쳐 온 빌딩 근처에서 비명이 들린다. 뒤를 돌아보니, 여러 사람이 소리를 지르며 빌딩 밖으로 우르르 뛰쳐나오고 있다. 순간 나는 빌딩 근처로 되돌아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호기심과, 내 안전을 위해 되도록 멀리 달아나야 한다는 본성 사이에서 잠시 고민한다. 결정할 때까지 잠시 제자리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다.  내심 빌딩 안에서나 빌딩 너머로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괴생명체가 나타나기를 기대했으나, 한참을 서 있어도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황급히 도망칠 만한 원인은 보이지 않는다. 흉기를 든 괴한이 날뛰고 있다면 지금쯤이면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이 도착할 법한데 그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그저 비명을 지르며 빌딩 밖으로 뛰쳐나오는 사람들만 보일 뿐이...
문화/예술 · 생활/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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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의 꿈 이야기 - '매달린 남자'

낯설면서도 친숙하고 평범하면서도 다채로운, 그래서 관광객의 시선을 쉼 없이 잡아 뺏는 홍콩의 거리에서 언제부터인가 높은 곳에 매달려 있는 한 남자가 내 걸음의 목표가 되었다. 그는 긴 사다리가 걸쳐진 기둥 끝에 올라 거리의 끊임없는 소음에도, 밀려왔다 밀려가는 인파에도, 가끔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도 아랑곳않고 영문 모를 자신만의 움직임으로 나부끼고 있었다.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서서 그가 아래로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기둥 끝에서 어딘가를 한참 응시하던 그는 마침내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기둥 근처에 다가갔을 때 그는 자신의 배낭에서 물병을 꺼내 벌컥벌컥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의 옆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알아챘다. 어린 시절에 영화에서 자주 보았었던,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았었던, 특히 한 영화에서는 그의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대사를 외울 정도로 보고 보고 또 보았었던, 수업 시간에도 자주 생각났었던, 자물쇠 달린 일기장에도 이름을 자주 적었었던 바...
문화/예술 · 생활/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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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의 꿈 이야기- '울다'

그저 슬픈 눈으로, 그리움이 가득 담긴 눈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듯한 눈으로,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눈으로 내 방 앞에 나란히 줄 선 사람들. 나는 최대한 조용하고 정성스럽게 그들을 맞이한다.  그들은 한 명씩 차례로 내 방 안에 들어선다. 제일 먼저 들어온 중년 여성은 창문에 드리워진 푸른색 커튼 앞에 서더니 커튼을 만지작거리며 눈물을 흘린다. 그다음에 들어온 청년은 책상과 의자를 한참 노려보더니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흘린다. 이어 휠체어를 타고 들어온 노인은 벽에 걸린 풍경화를 발견하자마자 눈물을 흘린다.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온 소녀는 진열대에 놓인 강아지 인형을 부둥켜안고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린다.  누구는 감정을 삼키는 듯 끅끅거리며, 누구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누구는 눈물을 바로바로 닦아내며, 누구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온 얼굴로, 누구는 바닥에 누워 온몸을 비틀며, 누구는 눈보다 목구멍으로 운다. 아무도 방 안을 가득 채운 사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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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의 꿈 이야기 - '첫 수업'

또 늦어 버렸다. 수업 시작 시각은 이미 20분이나 지나 있었다. 두 다리는 조급한 마음처럼 재빠르게 움직이지 않았고, 항상 제자리에 꽂혀 있던 교사용 지도서도 보이지 않았다. 나보다 한참 어린 동료 강사들이 허둥대는 나를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원장 선생님의 불편한 시선도 뒤통수에 날카롭게 꽂혔다. 하지만 나는, 나를 기다리고 있을 학생들의 눈빛이 두려울 뿐이었다.  첫 수업. 나만의 강점을 내세워 내가 꽤 괜찮은 강사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시간. 더구나 오늘은 지각까지 했으니 늦은 만큼 채워야 할 것이 많았다.  조심스럽게 강의실 안으로 들어서자, 여러 눈빛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염려와는 다르게 호기심, 놀람, 어색함, 반가움 등 각자의 감정을 품고 다양하게 빛나던 시선들. 찬찬히 둘러봐도 실망감이나 불신, 경계를 담은 눈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 안에서 안도감이 서서히 채워졌다. 하지만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이런 학생들 앞에서는 더 나를 제대로 증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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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의 꿈 이야기 - '병원 진료'

미루고 미루던 병원 진료를 받는 날. 늦은 오후에 병원을 방문한 나는 엉덩이 한쪽이 저릿할 때까지 같은 자리에 앉아 대기한다. 드디어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안주영 님! 마구 뒤엉킨 잡념과 미처 빼내지 못한 회상으로 가득 찬 머리를, 흔들리지 않게 잘 붙들고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간호사의 큰 목소리에 왼쪽 머리가 저릿해진다. 데스크 앞에서 작은 목소리로 전달한 내 증상을 저렇게 크게 말해 버리다니. 어쨌거나 나는 간호사 말대로 머리를 잘 붙들고 천천히 진료실로 들어간다. 의사는 나를 이리저리 진찰하더니 MRI를 찍어 보자고 말한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간호사는 나를 어딘가로 안내한다.  그곳에는 한눈에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병상이 놓여 있다. 나는 간호사가 가리키는 한 병상에 눕는다. 간호사는 내 이마에 끈적거리고 차가운 무언가를 잔뜩 바른 후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눈을 감고 대기하던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든다. 얼마나 시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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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의 꿈 이야기 - '빨래'

며칠째 계속 날이 흐리다. 햇볕을 쬔 지가 언제인가 싶다. 엄마는 세탁기 앞에서 등을 축 늘어뜨린 채 한참을 서 있다. 초등학생인 나는 계속 엄마 뒤에서 쭈뼛거린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는 서서히 잦아들었지만, 엄마의 짙은 한숨은 계속 이어진다. "이것만 널고 오렴." 엄마가 빨래 몇 개를 나에게 건네며 한 말. 엄마의 한숨이 잔뜩 묻어서인지 다른 날에 비해 묵직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빨래들을 책가방 속에 넣는다. 그러고는 집 근처에 있는 그곳으로 향한다. 위로는 황톳빛 흙이 가득 쌓여 있어 삭막한 사막에 있는 언덕처럼 보이지만, 아래로는 구불구불한 통로가 미로처럼 이어져 있는 곳. 비좁고 어두운 통로를 엉금엉금 기어서 통과하면 마치 보상처럼 따스하고도 신비로운 공간이 반겨 주는 곳. 이곳은 어디에서 들어오는지 항상 따스한 햇볕과 선선한 바람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손과 무릎에 묻은 흙을 물티슈로 닦는다. 그러고는 바위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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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의 꿈 이야기 - '반려동물'

집에 돌아오니 거실 한가운데에 커다란 박스가 놓여 있었다. - 후유, 드디어 올 게 왔구나. 근데 박스가 왜 이리 크지? - 1가정 1반려동물이라니, 뭐 이런 억지 정책이 다 있냐고! - 이거 완전 랜덤이라던데. 우리 집엔 어떤 동물이 왔으려나. - 얘들아, 엄마는 고양이 진짜 싫어하는 거 알지? 고양이 나오면 엄마는 이 집에서 못 산다. - 엄마, 난 새 공포증 있잖아. 새 나오면 어떡하지? - 내 친구네는 귀여운 강아지가 왔다던데. 걔는 벌써 SNS에 사진 올리고 자랑이 말도 아니야. - 아니, 동물 안 키워 본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이렇게 강제로 떠미는 건지. - 그래도 아빠, 이렇게라도 돌보지 않으면 수많은 동물이 너무 쉽게 죽어 버리잖아. 연약한 동물들이 살기엔 너무 환경이 척박해졌어. 관상용 식물만 잔뜩 키우는 게 답은 아니라고.  - 그건 그렇고 저 박스는 누가 뜯을 거니? - 난 싫어. 진짜 새라도 푸드덕거리면서 나오면 난 기절할지도 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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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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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의 꿈 이야기 - '새 학기'

"우리 몇 반이라 했는지 기억나?" "4반이라 했던 거 같은데..." J와 나는 이 교실 저 교실을 기웃거렸다. 고등학교 새 학기여서인지 모든 것이 낯설었다. 각 교실에서는 초면인 선생님들이 이미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중학교 동창인 J와 나는 1학년 4반 교실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 살그머니 뒷문을 열고 거의 엎드리다시피 한 자세로 교실 안에 들어갔다. 많은 책상과 의자 다리, 그리고 역시나 초면인 다른 학생들의 다리가 보였다. 우리는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이리저리 기어다니며 빈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우리의 자리는 없었다. 혹시나 해서 다른 교실에도 들어가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복도로 나와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 묶었다. J가 말했다. "안 되겠다. 우리 다른 곳에 잠시 앉아 있다 오자." "응? 다른 곳? 다른 곳 어디?" J의 대답이 들리기도 전에 우리는 적막한 사무실에 마주 앉아 있었다. J의 정수리 너머로 가정집처럼 격자무늬 벽지로 도배한 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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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의 꿈 이야기 - '가로수'

나무들이 너무 많이 지쳐 버렸다. 척박한 땅 위에서 씩씩하게 자라던 가로수들은 이제 '기댈 곳'이 필요해졌다. 어떤 나무는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다른 나무 꼭대기에 자신의 꽤 두꺼운 나뭇가지를 얹고 있기도 하고, 어떤 나무는 나지막한 건물 옥상에 나뭇잎이 유독 많이 달린 가지 몇 개를 올려놓기도 했다. 사방으로 미처 기댈 곳이 없는 동떨어진 나무 몇 그루는 자신의 몸뚱어리를 가누지 못해 기역자로 꺾여 차가운 보도블록에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몸통이 꺾이지 않은 나무들도 온 껍질이 새까맣고 딱딱하게 메말라서 안으로 곪아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유독 가느다란 한 나무는 작은 빗방울을 맞자, 이때가 기회라는 듯 평생 품고 있던 가지들을 미련 없이 바닥에 내동댕이치기도 했다. 빗방울보다 훨씬 크게 후드득, 소리를 내면서. 꽤 높게 자란 한 나무는 맞은편에 있는 전봇대를 향해 처절하게 가지를 뻗어 보았지만, 결국 닿지 못하고 나뭇잎 몇 개만 떨구고 말았다. 이제 나무들은 무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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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의 꿈 이야기 - '아빠의 선물'

집 앞에 당당하게 뿌리 내린 은행나무에 은행이 열렸다. 아빠는 사다리도 없이 날렵하게 나무를 탄다. 아빠보다 키가 한참이나 작은 어린 나와 동생은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고 나무에 오르는 아빠를 바라본다. 눈부시게 노란 은행잎 사이로 아빠의 신발 밑창만 가까스로 보일 무렵, 동네 친구들이 하나둘 나무 아래로 모인다. 갑자기 은행나무가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은행잎과 은행이 우수수 떨어진다. 나와 동생, 그리고 친구들은 동시에 ‘우와아’ 하고 탄성을 지른다. 한 친구는 고약한 은행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쥔다. 나는 동생과 함께 쪼그리고 앉아 엄마가 맛있게 구워줄 은행을 고른다.   나와 동생은 아직 키가 작고 어린데, 아빠는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세서 계속 누워만 있다. 우리 가족과 친척, 그리고 아빠의 지인들은 모두 아빠를 내려다본다. 아빠가 눈을 뜨지 않자 엄마가 아빠를 흔든다. 엄마, 아빠가 함께 찍었던 사진 여러 장이 떨어진다. 고모가 아빠를 흔든다. 아빠의 한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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