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끝난 다음 날인 1월 25일,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대식(가명) 어르신께서 돌아가셔서 장례 소식 전합니다. 지난해 12월 30일에 집에서 돌아가신 채 발견되었고, 연고자 장례의사를 확인하느라 늦어졌습니다. 무연고 장례로 홈리스행동에서 내일 치르려고 합니다."
대식 어르신이 돌아가셨다. 어르신을 찾아뵙는 걸 차일피일 미루면서 이런 날이 오리라 생각못했던 걸까. 나를 딸처럼 아끼던 분을 이렇게 보내드리면 안되는 건데. 하지만 슬픔과 자책보다 나를 얼어붙게 만든 것은 죽음 그 이후였다. 홀로 숨졌고,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가족을 기다렸으나 결국 무연고 장례를 치른다는 것, 대식 어르신이 생전에 가장 피하고 싶어했던 죽음이었다.
내가 아는 대식 어르신
나는 그를 20년 전, 노숙인 단체가 운영하는 쪽방에서 만났다. 50대 후반 정도인 그를 어쩐 일인지 사람들은 모두 '어르신'이라고 불렀다. 그는 항상 똑부러지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며 동료들에게 일을 나누는 역할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