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과 공포의 세계

박상수
2023/05/10
아이들의 교육과 관련된 마케팅을 보면 가능성과 공포의 마케팅이 대부분이다. 이것을 하지 못하면 인생은 망한다는 공포와 이것을 하게 되면 성공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성공의 마케팅이다.

나는 레일위를 차분히 밟아가는 인생을 살아왔다.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6년간 매월 시험을 봤는데 한번도 평균 95점 이하를 맞지 않았다. 내가 나온 초등학교는 평균 95점 이상이면 우수상을 올백이면 최우수상을 줬다. 매달 우수상을 받았고 최우수상도 종종 받았다. 중학교에 진학하며 반배치고사는 전교 4등을 하여 4반의 1등으로 입학했고, 중간고사때 전교 5등, 그리고 기말고사때 전교 1등을 했다. 이후 학폭에 시달리던 3학년 1학기를 제외하고 전교 3등 밖으로 나간 일이 없었고 매년 두번은 전교 1등을 했다. 3학년 1학기때 학폭에 시달리며 전교 4등을 한번 했는데. 타이거맘이었던 어머니에게 집 밖으로 쫓겨났다. 그래도 3학년 2학기때 과학고 준비를 조건으로 상담실에서 공부하며 3학년을 전교 3등으로 졸업하며 인천광역시장상을 받을 수 있었다(전교 1등에게 교육감상, 2등에게 재단이사장상이 주어졌다).

고등학교는 비평준화 고등학교다 보니 내신 성적은 좋진 못했다. 죽어라 공부했지만 내신은 반에서 7-8등 15% 정도 수준이었다. 그러나 수능 모의고사는 전교권이었다. 수능 모의고사에서는 전교 10등 전국 등수 1000등 이내의 성적을 꾸준히 유지했다. 98년 수능이 갑자기 쉬워지며 망한 수능 백분율이 2% 남짓이었다. 고려대 국문과를  합격했지만 바로 종로학원을 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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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와 함께 학교폭력 피해자 가족 법률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플랫폼 정책에도 관심이 있어 플랫폼 피해 직역 단체들과 함께 구성한 올바른 플랫폼 정책 연대의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최근까지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으로 재직했던 개업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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