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교수의 <제망매가> 해석에 대한 비판

이종철
이종철 · 전문 에끄리뱅
2024/05/20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서문에 보면 아주 흥미로운 비유가 하나 나온다. 한 사람이 숫염소의 젖을 짜려고 하니까 다른 사람이 그것을 받겠다고 통을 밑에 댄다는 것이다. 숫염소의 젖을 짠다는 일이 괴이한데, 그것을 받겠다고 하는 것은 우스꽝스럽기 까지 한 것이다. 칸트는 자기 이전의 형이상학적 논증들을 비꼬기 위해 이런 비유를 끌어들인 것이다. 그가 이 책의 후반부에서도 비판하듯, 그런 논증들은 틀리다고 할 수도 없고, 맞다고도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형이상학적 논중들은 검증이 불가능하다 보니 지속적으로 무의미한 논증들이 이루어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렇게 경험적 검증이 불가능한 것은 형이상학 뿐만이 아니라 가치를 논하는 윤리학과 예술적 경험 이를 테면 시에 대한 해석들에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쉽게 검증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그 분야의 대가가 한 말이 아무런 비판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확대되는 경우가 많다. 권위에 맹종하는 경향이 많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나는 이런 논증일 수록 더욱 더 철저히 비판해야 한다고 본다.

내가 최근에 '이어령의 <제망매가> 해석'을 읽으면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오랫동안 실려 있었던 <제망매가>라는 신라의 향가가 있다. 직접 이 향가를 인용해보자.

① 원문
生死路隱 此矣 有阿米 次肸伊遣
吾隱去內如辭叱都 毛如云遣去內尼叱古
於內秋察早隱風未 此矣彼矣浮良落尸葉如
一等隱枝良出古 去如隱處毛冬乎丁
阿也 彌陀刹良逢乎吾 道修良待是古如

② 현대어 풀이
가) 죽고 사는 길이 이 세상에 있으므로 두려운데
나)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하고 가버렸느냐
다)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리저리 떨어질 이파리처럼
라) 같은 가지에 났어도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
마) 아, 극락세계에서 만날 나는 도를 닦으며 기다리겠노라
(월명사, 「제망매가」)

여기서는 오래된 정통 해석으로 양주동의 해석에 기초했다. 양주동은 일본인 학자가 신라의 향가를 최초로 풀이한 것을 굴욕으로 생각하고 향가 연구에 매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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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비판》와 《일상이 철학이다》의 저자. J. 이폴리뜨의 《헤겔의 정신현상학》1(공역)2, G. 루카치의 《사회적 존재의 존재론》 전4권을 공역했고, 그밖에 다수의 번역서와 공저 들이 있습니다. 현재는 자유롭게 '에세이철학' 관련 글들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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