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50년이 지난 후, 나는 더 이상 ‘네이팜 소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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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0
 By 판티 킴푹(Kim Phuc Phan Thi)
킴 푹 여사, 온타리오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출처: 뉴욕타임스
나는 남베트남의 작은 마을 트랭 방(Trang Bang)에서 자랐다. 엄마는 내가 어릴 적 많이 웃는 아이였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소박하게 살았지만, 농장을 소유하고 있어서 먹을 것이 풍족했고 엄마는 시내에서 가장 좋은 레스토랑을 운영하셨다. 나는 학교를 좋아했고 사촌들이나 동네 아이들과 같이 놀면서 줄넘기도 하고 뛰어다니면서 잡기 놀이를 하던 즐거웠던 시절을 기억한다. 

이 모든 게 바뀐 건 1972년 6월 8일이다. 나는 끔찍한 그 날의 기억이 단지 파편처럼 남아있다. 그 날 나는 사촌들과 한 사원의 뜰에서 놀고 있었다. 다음 한순간, 비행기가 급강하하여 바싹 다가오고 귀가 터질 듯한 굉음이 났다. 폭발이 이어지고 연기는 자욱하고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다. 그때 나는 9살이었다. 

아무리 빨리 도망쳐도 네이팜탄 파편이 몸에 들러붙으면 끔찍한 화상을 입게 되고 그 고통은 평생을 간다. 나는 뛰어가면서 “너무 뜨거워, 너무 뜨거워!” 라고 울부짖었다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당시 영상과 목격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내가 그랬다고 한다. 

여러분은 아마 그 날의 내가 찍힌 사진을 봤을 것이다. 폭발로부터 도망치는 사람들 속에 팔을 죽 뻗은 채 고통에 울부짖으며 뛰어가는 벌거벗은 아이. 남베트남 출신인 AP통신 사진기자 닉 우트(Nick Ut)가 찍은 이 사진은 전 세계 신문들의 일면을 장식했고 그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결국 베트남 전쟁을 상징하는 유명한 사진 중 하나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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