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과연 보수이고 진보였을까?

박상수
2023/03/30
이것 역시 오래된 생각이고. 한번쯤 써야지 하던 것이었다. 특히 요즘 묻지마 극단적 이념대립을 볼때마다 아 사실은 그게 아닌데 싶을때가 많았기에. 길어지겠지만 한번 글을 써본다.


1. 이승만과 농지개혁

이승만 대통령이 반일 민족주의자인 것은 맞다. 그가 친일파 출신들을 중용했으나. 그것은 근대적 국가 설립을 위해 근대적 국가 운영 기술을 터득한 자들을 활용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 크다.

그는 일본이 눈에 가시처럼 여겨 한일협정 당시 폐지의 제1조건으로 내세운 이승만 평화선을 선포해 독도에 대한 논란을 완전히 불식시키려 했고. 한국전쟁의 위기 속에도 일본의 경찰예비대와 해상경비대 등 군사조직이 한반도에 들어오면 우선 그들과 전쟁을 하겠다고 선언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농지개혁을 생각하면. 그가 마냥 자유주의 우파였다고 이야기 하기 어렵다. 농지개혁은 정도전의 계민수전 이후 실현하고자 했던 경자유전의 원칙을 거의 완벽히 실현한 대사건이었다. 그는 이것을 사민주의자인 초대 농림부장관 조봉암을 중용하여 해냈다.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농지개혁은 북한의 무상몰수 무상분배보다 합리적이었고 결국 국유가 되어버린 북한의 농지개혁과 달리 자영농들에게 지킬 땅. 즉 사유재산을 주어.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대한민국을 지켜야 할 유인을 만들어 주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맡기면 결코 생기지 않았을 일을 국가의 힘과 사민주의자를 등용해 해낸 이력을 살필때 그를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기수인 보수로만 보기 어렵다.

2. 박정희와 경제개발 그리고 의료보험

지난번 포스팅에서도 이야기 했듯 박정희와 동료 쿠데타 세력은 대부분 흙수저 출신으로 기득권과 거리가 멀었다. 제3세계에서 사관학교는 학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흙수저의 영리한 아이들이 그나마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4.19. 가 이끌어낸 민중의 열망을 받아낸 것은. 그래서 친일파 대지주 기득권 연합인 한민당의 후신 민주당이 아니라 이들 청년 군인들이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는데. 반독재 반유신 투쟁에...
박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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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와 함께 학교폭력 피해자 가족 법률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플랫폼 정책에도 관심이 있어 플랫폼 피해 직역 단체들과 함께 구성한 올바른 플랫폼 정책 연대의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최근까지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으로 재직했던 개업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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