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와 욕망

이길용
이길용 · 종교와 문화로 사람을 읽는 여행자
2024/03/11

한 장의 그림과 하나의 사연
   
16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아뇰로 브론치노(Agnolo Bronzino, 1503-1572)의 작품 <비너스와 큐피드, 어리석음과 시간>을 봅니다. 제목에서 풍기는 사연의 아득함이나 애매함은 모두 뒤로 물리고 오로지 이 그림 자체에 몰입해 봅니다. 눈을 여는 순간 아찔한 핑크빛 살색이 한가득 몰려옵니다. 게다가 중앙에서 약간 왼쪽으로 치우친 곳에서는 한 쌍의 남녀가 야릇한 자세와 표정으로 뜨거운 입맞춤을 나누려 합니다. 등에 솟은 날개와 화살통을 보면 성숙한 여인네의 왼쪽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이 되바라진 소년은 큐피드임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이 소년과 입맞춤하고 있는 여인네는 비너스일 겁니다. 알고 있다시피 큐피드와 비너스는 모자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을 우리는 어찌 해석해야 할까요? 작품 그대로를 본다면 웬만한 포르노그래피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상당히 도발적이며 외설스럽고, 또 자극적입니다. 그런데도 이 그림은 ‘고전’ 내지 ‘걸작’이란 꼬리표가 붙어 지금도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걸려 수많은 방문객의 시선을 잡아두고 있습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이 그림 앞에서 명작의 향기를 즐기고 있는 것이죠.

물론 브론치노의 저 작품은 고전주의의 비율적 형식미에 대한 도전으로 생겨난 매너리즘을 아주 충실히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 속에 포진한 다양한 소재들이 갖는 상징적 의미 또한 세심하게 풀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큐피드가 밟고 있는 배게(음욕)와 그 옆의 비둘기(애무), 그리고 비너스 손에 들려있는 과일(애욕)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설명을 달고 포장을 한다 해도 이 그림이 주는 이 강렬한 외설적 이미지는 어쩔 수 없습니다. 단적인 비교로 저 그림이 주는 이미지 그대로 지금의 회화나 사진으로 표현했다면 일반 갤러리는커녕 공공 게시판에 올려둘 수도 없이 곧바로 차단당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거의 비슷한 수준의 성적 이미지를 제공하는 이 작품은 특별한 제재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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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Marburg대학교에서 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학위 후 귀국하여 지금은 서울신학대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주 관심 분야는 ‘동아시아 종교’와 ‘해석학적 문화 비평’이며, 제대로 된 <한국종교사상사>를 펴내는 오랜 꿈을 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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