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짝이 안경'과 '적자생존'의 디스토피아

곽경훈
곽경훈 인증된 계정 · 작가 겸 의사
2023/02/17
인간은 유토피아를 꿈꾼다  
 
인간은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교가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제시한다. '예수의 부활과 재림'을 신앙의 핵심으로 내세우는 기독교는 말할 것도 없고 도교는 무릉도원을, 불교는 '미륵이 다스리는 세상'을 그들만의 유토피아로 내세운다. 심지어 지극히 현세 중심적인 유교조차 '요순시대'를 이상적인 사회로 흠모한다. 이제는 거의 사라진 조로아스터교에도 '빛의 신이 승리한 세상'이 유토피아로 등장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유토피아의 모습을 상세히 설명하는 경우는 드물다.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도 '최후의 심판'을 앞두고 겪을 온갖 재앙과 고난만 세밀하게 묘사할 뿐이다. '예수의 재림' 이후에 다가올 '천상의 제국'에 대한 묘사는 매우 부실하다. 불교의 미륵신앙도 정작 미륵부처가 와서 만들 세상에 대해서는 설명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도교의 무릉도원도 마찬가지다. 반면에 염라대욍이 다스리는 지옥에 대한 묘사는 매우 실감난다. 
 
문학으로 눈을 돌려도 상황은 비슷하다. 단테가 쓴 신곡을 읽어보면 베르길리우스가 안내하는 지옥과 연옥은 매우 생생하지만 배아트리체가 길잡이로 등장하는 천국은 밋밋하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1984', 레이 브레드버리의 '화씨 451', 모두 디스토피아를 실감나게 묘사하지만 유토피아를 가슴에 와닿게 그려낸 작품은 극히 드물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혹성탈출'과 '오메가맨' 같은 고전SF부터 '화씨 451'을 표절한 것 같은 '이퀼리브리엄'까지 디스토피아물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장르를 이룬다. 또, '스타워즈'도 결국에는 디스토피아가 성립되는 과정과 그걸 무너뜨리려는 투쟁을 담은 이야기이며 DC코믹스의 '배트맨'과 '슈퍼맨'은 마블코믹스와 달리 매우 어둡고 냉소적이다. (넷플릭스 같은 OTT에도 디스토피아를 그린 드라마시리즈가 넘쳐난다.
 
우리는 왜 이렇게 디스토피아를 잘 알고 있을까? 
 
우리가 디스토피아를 실감나게 그릴 수 있는 이유는 익숙하기 때문이다. 유토피아가 현실에 구현된 사례는 극히 드물지만 디...
곽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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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의 메디컬에세이를 쓴 작가 겸 의사입니다. 쓸데없이 딴지걸고 독설을 퍼붓는 취미가 있습니다. <응급실의 소크라테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반항하는 의사들>, <날마다 응급실>, <의사 노빈손과 위기일발 응급의료센터>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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