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해고당하는 사람은 정년을 꿈꾸지 못한다 (아빠 그때 왜 울었어?①)
2023/03/20
한때 내가 본 누구보다 네모난 헤어스타일, 네모난 안경, 네모난 눈, 네모난 턱, 네모난 상체와 네모난 하체, 네모난 발(발마저도!)을 가졌던 이 남자. 나이가 들면서 각이 조금씩 옅어지고, 네모난 형태의 동그라미가 되어가고 있는 이 남자. 언젠가부터 스스로를 ‘도화니’라고 부르는 62세 김도환은 내 아빠다. 우리는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는다. 사이가 나빠서가 아니라(아마도), 자기 얘기를 잘 안하는 60대 남성과 30대 여성이 부녀로 만나서 그렇다.
가끔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경우는 크게 둘이다. 하나는 내게 거실 쇼파에 멍때리며 앉아있을 수 있을 시간과 내 이야기를 꺼낼 마음의 여유가 주어졌을 때. 내가 집을 숙소처럼 사용하니, 일 년에 한두 번 될까 말까 한 기회다. 다른 하나는 아빠가 술을 마셨을 때.
어렸을 땐 아빠가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오는 날을 기다리기도 했다. 아빠가 한껏 상기된 얼굴로 자신의 옛날이야기를 해줬기 때문이다. 거기엔 부모님과 안락한 30평대 아파트에서 살고, 걱정 없이 학교에 다니는 내가 상상하기 힘든 세계가 있었다. 성장소설이나 청소년 인문학 서적에도 나오지 않는 멋진 모험이, 가슴 아픈 먹먹함이 있었다. 엄마는 아빠가 술 먹고 내게 술주정한다고 싫어했지만, 나는 네모난 아빠가 유일하게 눈물을 보여주는 시간이라 좋았다. 물론 이야기는 이리 튀고 저리 튀었고, 아빠 기억 속 가장 선명한 부분들만 내게 얘기해줬다. 나는 토막난 이야기들을 들으며 아빠가 왜 울었는지 어림짐작하곤 했다.
하나 아쉬운 게 있었다면, 아빠가 술기운에 토막난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는 거다. 십 대 후반이 되었을 때 나는 이미 아빠의 레퍼토리를 다 알아버렸다. 언젠간 아빠가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때 더 물어봐야지, 하고 생각한 지 벌써 몇 십 년. 좀 늦었지만, 아빠가 정년퇴임을 한 틈을 타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아빠, 그때 왜 울었어?
- 자꾸 해고당하는 사람은 정년퇴직을 꿈꾸지 못한다
아빠는 60살이 되던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