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군대로 무엇을 하겠는가.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8/24
이 군대로 무엇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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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을 갈 때마다 느끼지만 실로 천험의 요새다. 봉우리와 봉우리를 이어 성을 쌓았지만 정상부는 평탄하여 마을이 형성될 정도다. 깎아지른 경사로 성으로 오르기는 힘든데 성 안의 병력을 넉넉히 수용할 수 있으니 식량과 보급만 충분하다면 어떤 대군도 물리칠만한 곳이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전광석화 같이 서울을 향해 내달려 온 청나라 선봉대에 의해 강화도 길이 막혔을 때 인조 임금과 조정의 선택은 이곳 밖에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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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하지만 문제는 보급이었다. 처음 남한산성에 들어왔을 때 관량사(管粮使)로서 산성 내의 군량 및 물자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던 나만갑은 대충 6~70일은 버틸 식량이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인근 병력들과 피난민들이 성 안으로 유입되면서 금세 계산 착오가 드러났다. 왕족들은 그래도 잘 먹어야 했고, 그 수발 들 노비들도 마찬가지였다. 식량은 빠르게 줄었고, 성첩을 지킬 병사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동시에 떨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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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이 없다면 천험의 요새도 아무 소용이 없다. 청군은 남한산성을 강고히 포위하고 압박했다. 가까운 충청도 근왕군이 급히 북상했지만 험천 전투에서 깨강정으로 박살나고 말았다. 어떻게든 전기를 마련해야 했다. 독전어사 황일호 같은 사람은 결전을 주장했다. 앉아서 죽으나 서서 죽으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하는 다급함이었다. 최고 지휘부의 마음도 초조했다. 병자년이 저물어가던 음력 12월 28일. 반가운(?) 소식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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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적에게 화평을 청하든, 아니든 싸움을 벌이든 모두 길한 날입니다.” 남한산성에 들어와 있던 술사들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천공 같은 술사들은 있고, 거기에 귀를 기울이는 높으신 분들은 있는 법이다. 이 술사들의 말에 혹한 것은 자그마치 영의정 겸 도체찰사 김류였다. “그래. 뭘 하든 좋은 날이라니 뭐라도 해 보자. 자! 체찰부 휘하 군병들 집합!” 하지만 이게 말이 되는 얘기가 아니었다. 당장 관량사 나만갑부터 한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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