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만 안망했으면 -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를 읽고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10/01
#산하의_오책 - 신라만 안망했어 봐라 내가 표준말이다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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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딩 시절 한때 엉뚱한 착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세종 대왕 이전엔 한국 사람들은 무슨 말을 했을까.” 세종은 우리 말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자를 발명했을 뿐인데 ‘우리 말’ 자체를 만들어낸 것으로 잘못 안 것이다. 오해는 오해라고 치지만 우리 조상들의 언어 생활은 여전히 궁금한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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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 정세가 오늘날 이상으로 긴박하게 돌아갔다 싶은 642년 평양에서 마주앉은 신라와 고구려의 두 영걸 김춘추와 연개소문은 과연 영화 <황산벌>처럼 경상도 사투리와 평안도 사투리로 대화했을까. 중고딩 시절 배웠던 ‘서동요’ 가사의 첫 소절 ‘善花公主主隱’을 ‘선화공주主(훈독)隱(음독)’으로 읽는 해석이 과연 맞는 것일까, 등등등 어디 한두 가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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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문의 거지반은 우리 옛 기록 태반이 한자, 한문에 의지하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될 것이다. 말 따로 글 따로 쓰는 것은 훈민정음 이전이나 이후에나 큰 차이가 없었다. 더하여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 저자 장지연은 이렇게 말한다. “말과 글이 일치하고 공식적인 문자 사용에서 격차가 없어진 것은 기껏해야 1945년 해방 이후 들어서이니 백년도 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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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이전이라고 발랄한 ‘문자 생활’이 없었을까. 한자를 모르고 한문을 짓지 못하면 그저 눈 뜬 장님에 꿀 먹은 벙어리고 살아야 했을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문자를 아는 이도 적은 와중에 여러 문자가 사회적으로 통용되었다. 문자 별로 배우는 데에 드는 공이 다르고 사용하는 형식과 사용자의 사회적 지위도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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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수도의 공식 명칭은 한성부(漢城府)였다. 그 외에도 호칭은 많았다. 한양(漢陽)은 물론 일본이 붙인 이름이라고 눈 부라리는 사람 많은 경성(京城)도 엄청나게 많이 쓰였고. 경사(京師)라는 호칭도 즐겨 쓰였다. 그런데 한자 단어는 기본적으로 위계질서가 명확하다. 그런데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을 분석하면서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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