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편지19] 자연과 이야기

조은미
조은미 인증된 계정 · 읽고 쓰는 사람. 한강조합 공동대표
2023/06/22
아버지를 흙 속에 뿌리고 돌아온 밤, 부슬부슬 비가 내렸습니다. 언니네 집 창 밖으로 계곡에서는 희미하게 개굴개굴 소리가 들렸습니다. 

속절없이 내리는 비를 보며, 비가 많이 내려 아버지의 유해가 떠내려가면 어쩌나 하는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옆에 앉은 여동생에게 그 말을 하다가 동화 속 청개구리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청개구리는 엄마 청개구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렇게 말을 안 듣다가, 엄마가 병들어 죽고 나서야 후회하며 처음으로 엄마 말을 듣고 개울가에 엄마를 묻었다지요. 

올 여름에는 비가 상당히 많이 내릴 거라는 예보를 들었습니다. 특히 제주도는 평소에도 아열대성 스콜 같은 비가 자주 내리는데 오죽할까 싶네요. 평생 고단한 삶을 살고 떠나신 아버지에게 효도를 다하지 못했던 저는 청개구리처럼 개굴개굴 울고 싶어졌습니다.
(제주 고향마을 아버지의 빈 자리가 쓸쓸합니다.)
아버지가 몸져누워 마지막 날들을 보내는 동안, 칠남매 중에서 저는 이야기 담당이었습니다. 그건 제가 이야기하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줄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언니들은 돌봄에 능숙하고 지극했고 동생들은 민첩하게 아버지의 요구에 바로바로 응했지요. 그러나 저는 돌봄도 서툴고 아둔하여,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가만히 있다가 주섬주섬 이야기를 꺼내곤 했습니다. 

아버지도 아는 제 고향친구와의 첫사랑 이야기는 아버지를 즐겁게 하신 것 같습니다. 산소마스크를 낀 얼굴임에도 희미하게 웃으셨어요. 열 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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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생태를 가꾸고 강문화를 만들어가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에서 일합니다. 읽고 쓰는 삶을 살며,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숲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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