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한국이 아니다] 20년 동안 독일에서 인종차별 받으면 생기는 일 II -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2024/05/08
일상의 인종 차별은 ‘무지(無知)’로부터 나온다.
문제의 원인이 누군가의 ‘무지(無知)’에 있다면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그들을 무지(無知)의 상태에서 지(知)의 상태로 바꾸면 된다.
그럼 한국인으로서 또는 아시안으로서 그들에게 무엇을 알려주어야 할까. 그것이 일상의 인종차별에 관한 것이라면 그것은 명확하다.
“우리는 너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잘났어. “
맞다. 유치하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다. 작고 약하고 무식한 아시아에서 온 꼬맹이 취급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를 ‘무시해도 되는 사람’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무시받지 않기 위해 가장 강력한 방법은 실력을 인정받고 권력을 갖는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 최고라고 하면 누구나 한국인을 떠올린다던지. 세계의 정치권, 경제계의 거물들 중에 한국인이 빠짐없이 들어가 있는 시대가 온다면 아마 얘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더군다나 길거리나 상점, 관공서에서 스치는 인연들에게 나의 실력과 지식과 인품을 증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상의 인종 차별에 대처하는 방법을 다루기 전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무지를 넘어 지의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편견’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사실 편견이 없어지기까지는 모든 종류의 사람과 모든 형태의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니다. 규정할 수 없고, 패턴화 할 수 없는 다양성이 있을 때만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키가 아주 큰 사람부터 아주 작은 사람까지,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들부터 집 없는 홈리스까지, 엄청난 천재 학자부터 못 배운 사람, 세계적인 가수나 배우뿐 아니라 심지어 유명한 포르노 배우도 있는 나라 출신의 사람을 만나면 편견을 갖기가 어렵다. "오늘 여기 '미국 사람'이 올 겁니다."라고 하면 어떤 사람이 오는지 감이나 오는가?
그렇게 보면 인종차별에 대응하는 방법 역시 다양할수록 편견을 없애기에 좋은 것이라 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