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포테인먼트 산업의 주역이자 각본 없는 드라마의 주인공 - 김일

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3/05/12
김일 선수의 박치기 장면. 출처-동아일보
한국 프로레슬링계의 풍운아, 김일(金一, 1929~2006)
   
어렵던 시절 국민의 영웅, 박치기왕 김일 
   
1990년대 말 IMF 시기 국민들에게 거의 유일한 위안은 ‘박세리’와 ‘박찬호’의 승전보였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골프’와 ‘야구’ 분야에서 종주국인 서양 선수들과 겨뤄 당당히 승리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잠시나마 행복한 감정을 느꼈다. 남다른 노력과 실력으로 국외에서 선전을 펼치는 운동선수에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감정을 이입했다. 너나없이 박찬호의 승리 가치를 금전으로 환산해보고, 박세리의 LPGA 메이저 대회 우승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입을 모아 이야기하곤 했다. 
   
사람들은 위태로운 시간을 견뎌야 하는 순간이 오면, 으레 의지할 데를 찾기 마련이다. 전례 없는 경제 파탄으로 웃을 일 없고, 기댈 곳 없던 사람들에게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의 스포츠 영웅들은 아주 좋은 피로회복제였다. 한바탕 크게 웃고, 주먹을 불끈 쥐고 나면 ‘실직’과 ‘내핍’으로 찌든 삶이 약간이나마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당시 활약했던 선수들이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아 있는 까닭은 그 시절 우리의 마음을 무엇보다 크게 위로해주었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나고 부상 입은 머리에 붕대를 감은 김일의 모습. 출처-KBS
 
1990년대에 박세리와 박찬호가 있었다면, 1960~70년대 한국인들에게는 ‘박치기왕’ 김일(金一, 1929~2006)이 있었다.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안되던 시절에, 우리보다 월등하게 잘 사는 나라의 선수들과 대등하게 경쟁하는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희열과 쾌감을 맛보았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김일은 단순한 ‘운동선수’나 ‘엔터테이너’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링 위에서 맞고 있는 김일의 고통에 같이 아파하고, 가까스로 이겨내는 ...
강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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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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