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직 여자 직원만 유니폼 입힌 농협, 직원은 카메라를 들었다

김성호
김성호 인증된 계정 · 좋은 사람 되기
2024/04/10
▲ 반짝다큐페스티발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농협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이 사무실 앞에 나와서는 건물 앞에 심어둔 사과나무 주변을 맴돈다.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는 누가 보아도 아무나 따먹으라고 둔 것은 아닌데, 그녀는 한참 주변을 서성이다가 마침내 잘 익은 사과 하나를 똑 떼어서는 자리를 뜬다. 씹으면 아삭- 소리가 나는 잘 익은 사과를 남몰래 썰어 한 조각 입에 넣는다. 도대체 왜 그녀는 하나로마트가 아닌 직장 앞에 심긴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 먹은 것일까.
 
31분짜리 다큐멘터리 <그녀는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는 농협 여직원이 사과를 따 먹은 이유를 담아낸다. 영화를 보고나면 사과는 그저 맛난 과일인 것만은 아니다. 그녀가 받아 마땅했던, 그러나 끝내 받을 수 없었던 사과, 무단으로 하나 따 먹어야만 조금이라도 성이 풀리는 그런 것이 된다.
 
영화를 찍은 이는 농협 계약직 직원으로 근무하는 김예랑이다. 농협에서 업무지원역 계약직 노동자로 일하며 공채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업무지원이란 말하자면 잡일이다. 서류를 정리하고, 폐기하며 다른 사무직 직원들의 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아 한다. 여기까지는 입사 전에도 예상하던 바다. 몰랐던 건 다음이다. 탁자를 닦고, 직원들이 사용한 식기며 컵을 설거지하는 것 같은 일. 정직원은 하지 않는 단순노동은 수시로 자존감을 깎아내린다.
 
▲ 반짝다큐페스티발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계약직 여직원만 유니폼을 입는 회사

더 거슬리는 일도 있다. 유니폼이다. 정직원은 아무도 입지 않는 유니폼을 계약직 직원들만 입는다. 변호사나 노무사 같은 전문계약직은 물론이고 같은 일반 계약직 중에서도 남자직원들은 유니폼을 입지 않는다. 말하자면 일반계약직 여직원만 유니폼을 입는다. 이쯤이면 유니폼이 낙인처럼 보이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정규직과 계약직, 전문계약직과 일반계약직, 다시 남자와 여자를 가르고 그중 못한 이를 드러내는 낙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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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서평가, 작가, 전직 기자, 3급 항해사. 저널리즘 에세이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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