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와 동떨어져 있지 않은 비극적 삶의 모습 - 채만식의 <탁류>

윤지연 · 교사
2023/12/15
채만식, <탁류>

현재와 동떨어져 있지 않은 비극적 삶의 모습 - 채만식의 <탁류>

예상과 달리 오늘날과 그리 동떨어지지 않은 이야기였다. 인물들이 겪는 사건의 내용들이 그랬다. 작중 묘사되고 있는 여럿 인물들에게서 오늘날 한국인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미두장에서 가산을 탕진하는 정 주사에게서는 비트코인이나 주식으로 재산을 날려먹는 사람들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아들을 타박하는 유 씨와 암만 공부해도 아버지처럼 될 텐데 뭣하러 공부하냐는 철부지 아들의 투닥거림은 사춘기 자식과 부모의 갈등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작가 특유의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문체도 작품을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작품의 서술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전반부에는 군산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그들을 전체적으로 조명하는 서술을 하고 있는 반면, 중반부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는 정 주사의 딸 초봉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스러져가는 가세를 뒤집기 위한 부모의 셈법에 의해 그리 원치 않던 결혼을 하게 되지만 남편이 죽어서 허사가 되었고, 그 와중에 자신에게 나쁜 마음을 품은 악인 형보에게 겁탈당하는 등 기구한 일을 겪으며 초봉의 내면은 변화한다. 

혼인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부모님께 어느 정도의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할지를 상의하자고 남편 고 태수가 이야기할 때만 해도, 초봉은 돈 문제에 대해 대놓고 이야기하기를 부끄러워하는, 소위 ‘교양’을 갖춘 여자였다. 설령 자신의 혼인이 애초부터 그런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고 태수가 죽고 박제호와, 그리고 어찌어찌하다 장형보에게 잡혀 살기 시작하고부터는 달라졌다. 자신의 가족들과 자기가 낳은 딸 송화를 위해 조금의 거리낌 없이 돈을 요구하는 초봉은, 식민치하에서 고등교육을 배우며 쌓아온 교양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몸소 체득한 상태다.

초봉이 비극을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당사자라면, 승재는 그런 조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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