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희생자의식을 극복하다—<가여운 것들>과 <아가씨>의 페미니즘

동네청년 · 망원동에 기거하는 동네청년입니다.
2024/03/12
*이 글은 영화 <가여운 것들>과 <아가씨>의 주요 장면에 대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상상력과 기억의 재구성을 통하여 탄생하는 허구의 이야기가 "객관적" 사실—만약 그런 개념이 여전히 가능하다면—보다 더 진실에 가깝다는 명제는, 외부세계의 속성보다 그것을 경험하는 주체의 내적 요인—이를테면 "통각"(칸트), "인식"(현대사회과학) 등—의 가변조건이 지적 탐구대상으로 우선되는 근대적 전환이 없이는 납득하기 힘들다. 68년 학생운동을 기점으로 극작가와 소설가들이 던진 상식과 규범에 대한 수많은 도전장들은, 하루종일 서쪽으로 밀려나기만 하는 해와 달과 별자리들을 보고서 "하늘은 가만히 있는데 땅이 동쪽으로 밀려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낸 코페르니쿠스의 발칙한 신성모독의 연장으로서 상식과 규범이 상식과 규범으로서 기능하는 조건들을 파헤치며, 객관적사실은 특정계층의 주관적기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역사적배경에서, 3월 6일 극장개봉한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가여운 것들>(2023)은, 주인공의 목을 죄는 기성사회구조를 유지하는데에 핵심적인 '식민지 남성의 욕망'을 화려한 색채로 낱낱이 드러내는데에 차별된 강점을 보인 박찬욱, 정서경의 <아가씨>(2016)와는 달리, 이미 무너져내리기 시작한 구조물의 폐허 속에서 '꺼지지 않은 여성 섹슈얼리티'의 불씨를 긍정하고 재생된 열정의 예견된 승리를 자축하는데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다.

저항과 극복의 대상, 남성
주제의식에서 두 영화는 닮아 있다. <가여운 것들>의 주인공인 벨라 백스터(에마 스톤 분)가 맞닥뜨리는 남성권위의 다양한 형태는 영화 속 색감의 변화와 초현실성으로 재현되는 주인공의 발달과정과 평행을 그리며 흥망성쇠의 곡선을 따른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대유는 바람둥이 변호사 던컨 웨더번(마크 러팔로 분)의 인물로, 그의 화술, 신분, 지위, 외모, 교양, 인맥 혹은 사회적자본이 갖는 정형화된 남성적매력은 벨라 자신의 정신적 성장에 주요한 주춧돌임과 동시에 그녀 자신의 비판적사고를 통해 쾌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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