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성 · 냉철하고 싶으나 삐딱해지는
2022/03/15
뉴스는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것이 일차적인 존재의 이유이지요.
하지만 인간의 생활이 복잡해지면서 뉴스의 양이 폭증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취사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취사선택에 있어 분명한 기준이 필요하다.
하지만 오늘 날 우리나라의 뉴스의 취사선택이 과연 분명하고 공정한 기준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선택에 있어 이익과 관점이 개입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의 뉴스는 정파적이고 소수의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음을 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뉴스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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