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날은 오래가지 않아

이윤희 시인
이윤희 시인 · 시민강사/ 시인
2024/04/09
# 화창한 날은 오래가지 않아

 두 눈을 감고 있다. 보리수 나무 아래 수많은 갈래로 뻗어나온 뿌리가 감싼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미세하게 열린 눈꺼풀 사이 보이지 않는 눈동자는 어디를 향해 있는지, 극락의 세상인지, 홍진의 세상인지. 홍채가 향하는 곳이 궁금하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관광객들 사이, 그들이 일으킨 먼지와 소음으로부터 초연해 보이는 나무 뿌리 아래 불상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영화 <더 파더)(2020년)의 주인공 안소니 홉킨스의 텅 빈 눈이 오버랩 된다.


 플로리앙 젤러라는 작가가 연극과 영화로 제작한 작품으로 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받을 정도로 독특한 구성과 연출이 인상적인 영화로 안소니 홉킨스에게 양들의 침묵 이후로 2번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그간 가족애와 연민, 신파적 감정이 주를 이루는 치매환자를 다루는 영화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이 영화는 안소니 홉킨스, 즉 치매 환자 본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주 시점이 바뀐, 독특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노령의 아버지가 걱정이 된 딸 앤은 아버지와 함께 살기 위해 아버지의 커다란 저택으로 이사를 온다. 독립적이고 품격있고 고급스러운 취향도 갖고 있는 아버지 안소니, 삶의 시간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기에 유한하고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며 보내야 하는지 늘 고민하는 그는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만들어 온 사람이다. 이제 자신의 일생동안 마련한 아늑하고 아름다운 집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일만 남았다 생각이 들던 그때, 그의 일상이 온통 혼란스러워진다.



 동일한 역할을 하는 여럿의 사람들이 계속 등장하고, 갑작스레 바뀌는 인테리어와 소품들이 보이며 미래를 고민하는 소녀와 자신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몰라 혼란스러워 하는 안소니의 교차를 통해 혼재된 시간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그의 감정에 점점 몰입하게 만든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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