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춘곡과 소고당 – 정읍 여행 2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11/07
상춘곡과 소고당 – 정읍 여행 2 
   
“紅塵(홍진)에 뭇친 분네 이내 生涯(생애) 엇더한고.” 이 구절을 들으면 아 분명히 배운 건데.... 하며 이마를 짚는 사람이 많으리라. 그 중에 똑똑한 사람은 “정극인의 상춘곡!”을 소리쳐 부를 수도 있겠다. 대입 수험생 때정극인은  웬수같은(?) 사람이었다. 이 ‘가사(歌詞)의 효시’인 작품 이후 송순의 면앙정가가 나오고, "임금한테 아부한다고 이런 짓까지 하다니!"  개탄을 낳았던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 속미인곡 관동별곡 공포의 삼종 세트가 등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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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 없으면 장독이나 깨지 뭣하러 이런 가사를 만들었을까 하는 수험생의 원망은 타당했으나 우리 말 우리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불우헌(不憂軒) 정극인의 존재는 사실은 무척 고맙다. 복잡한 한자로 어려운 운 맞춰 짓는 한시가 아니라 술술 나오는 우리 말로 노래하듯 부를 수 있는 가사를 짓고 노래했다는 것 자체로 정극인의 호는 ‘근심이 없는’ 불우헌이 아니라 영원히 간직될 불후헌(不朽軒)이 돼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가 드높이 섬기는 조선 후기의 천재 다산 정약용이 정말이지 단 한 편의 한글 저술도, 하다못해 편지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비하면 더욱 그렇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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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그렸는지는 알 수 없는 정극인 초상. 아주 옛날 솜씨는 아닌 듯.


정극인은 정읍의 무성서원에 모셔져 있지만 원래 이 지방 사람은 아니다. 경기도 광주 사람인데 세종 때 절 짓는 일에 결사 반대하다가 죽을 뻔하고 북도로 귀양 갔다 온 뒤 처가가 있던 태인(오늘날의 정읍에 포함)에 들어와 살았다. “여보게 이웃들아 산수 구경 가자꾸나. 나들이는 오늘하고 목욕은 내일하자” 하면서 호시절만 보낸 것은 아니었고. 향약을 만들어 촌민들을 계도하고, 모범이 되는 선비로 살았다. 무려 나이 여든에 세종의 증손자인 성종 임금 앞에 나아가 세종 임금의 실책이라 할 ‘부민고소금지법’ 즉, 백성이 지방관의 허물을 고발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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