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의 고고인류학 159편 - 상좌부 불교, 또는 초기 불교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미얀마 불교

알렉세이 정
알렉세이 정 · 역사학, 고고학, 인류학 연구교수
2024/05/18
나는 2019년 미얀마 불교의 본산이자 미얀마의 상징인 쉐다곤 파고다에 왔었다. 전설에 의하면 쉐다곤 파고다는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지어졌다고 한다. 고고학계에 의하면 쉐다곤의 상징인 높이 98m의 불탑은 사실상 6~10세기 사이에 몬족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여기고 있으나, 이곳 승려의 기록에 따르면 불탑은 부처가 죽기 전인 B.C 486년에 지었다고 되어있기 때문에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아직 논란에 있다.
사진 : 미얀마 상좌부 불교의 중심,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 사진출처 : kimkim, Create your custom-made trip to Myanmar, https://www.kimkim.com/c/explore-buddhism-in-myanmar-15-days

탑은 1300년대에 바고의 빈야우 왕에 의해 18m의 높이로 재건되기 전까지는 파손된 상태였다. 이후 몇 차례의 개축을 거쳐 15세기에 현재의 98m 높이가 되었다. 몬족의 왕은 바고의 쉐마우다우와 쉐다곤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불탑을 소유하고 있었다. 원래는 8m에 불과했으나 1362년에 빈야우 왕에 의해 20m의 높이로 증축되었다. 신사우부 여왕(1453~1472)은 탑의 높이를 40m로 높였다. 16세기 초까지 불탑은 미얀마에서 가장 인기있는 순례지가 되었다.

미얀마 불교는 상좌부 불교, 또는 초기 불교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미얀마 인들의 삶에는 종교가 생활 곳곳에 뿌리박고 있다. 스님들을 존경해서 스님들 차량은 번호판도 달라서 쉽게 식별할 수 있게 되어 있기도 하다. 또 탁발을 통해서 재가자들이 수행자들에게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믿어 마을마다 순번을 정해서 기꺼이 자기의 것을 내어놓고 있다. 불교 신앙 덕분에 남의 것을 탐하지 않아 미얀마의 범죄율은 낮은 편에 속한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욕망을 부채질하여 성장 가도를 달려야 하는데 그 부분에 있어 불교 신앙은 그런 부분에 있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있다. 화려한 쉐다곤의 전각들을 보니 대단하고 화려하고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에는 미얀마 사람들의 대단한 불심, 그리고 얼마나 승려들에게 빨렸을까? 라는 생각들이 동시에 일어난다. 오전 시간 거리로 나가면 붉은색의 가사(승려가 입는 옷)를 걸치고, 줄지어 탁발을 하는 스님들의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런 모습에서 미얀마는 불교의 나라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미얀마 인구의 89%가 불교를 신봉하고 있으며, 미얀마 전역에는 약 61,000개의 사찰이 있고, 스님의 수는 대략 45~50만 명으로 추정된다. 미얀마와 동남아시아의 상좌부 불교는 자기완성, 즉 개인의 해탈에 주안점을 두고 수행을 하는 불교의 유형을 갖고 있다. 역사적으로 미얀마에서는 불교가 전통적으로 국교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불교가 미얀마의 정신적 지주로 정립된 것은 11세기에 바간 왕국을 건국한 아노라타(Anawrahta) 왕(1044~1017년)때다. 몬족 출신의 승려인 ‘싱 아라한’에게 불교를 사사 받은 아노라타왕은 다양한 종교를 상좌부 불교로 통합했다. 아노라타 왕은 최초의 통일국가른 이룬 통치자로서 다양한 민족의 통합을 위해 불교를 국가의 지도이념으로 삼을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 같다. 이 때부터 미얀마의 불교는 바간 왕국의 뒤를 이은 여러 왕조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보호 속에서 순탄하게 기반을 넓혀 왔다. 미얀마 불교가 최초의 시련을 겪은 것은 19세기 후반부터 1948년까지 60여년 동안 지속된 영국의 식민통치 기간이었다.

영국 식민 통치자들은 불교를 억압했고, 영국을 대리해 미얀마의 관료제와 경제체제를 장악한 이슬람계 로힝야 족들의 불교 탄압도 극심했다. 이렇게 되자 불교계는 젊은 승려들을 중심으로 민족주의의 깃발을 들게 되었다. 1908년 ‘우 오타마’(U Ottama) 스님을 중심으로 미얀마 청년불교도연맹(YMBA) 창설되었고, 이 조직은 반영(反英) 독립운동의 구심점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미얀마 인들은 절에서 기도도 하면서 기원도 하고 빗자루질로 인해 스스로의 성찰과 봉사도 아까지 않는다. 그리고 때로는 가족들끼리 음식을 가져와 식사도 하면서 오봇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미얀마 사람들에게 불교는 그냥 삶이자 생활 자체다. 미얀마 문화는 곧 불교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불교는 미얀마 인들의 생활양식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미얀마에서 불교를 신봉하는 가정에는 거의가 집안에 빠야씬(Pha yar sin)이라는불단을 갖추고 있다.

대다수 미얀마 인들의 가정에서 엄수하는 불교 의식 가운데 하나가 ‘신쀼’(Shinpyu) 의식이다. ‘신쀼’란 7~13세 사이의 남자 아이들을 몇 주 혹은 몇 개월 간 사원으로 보내 승려생활을 체험하도록 하는 제도다. 신쀼 행사는 일종의 성인식으로, 미얀마의 남자 아이들은 이 시기에 불교의 교리와 함께 미래의 지도층으로서 갖추어야 할 극기와 인내, 배려심 등을 체득하게 된다. 미얀마인들이 생활화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의식의 하나가 보시(앗흐루, Ah Hlu)이다. 미얀마는 세계에서 기부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이며, 국민의 90% 이상이 기부에 참여하고 있다. 

이런 기부문화는 불교에서 비롯된 것으로, 스님이나 사찰에 대한 공양은 곧 사회적인 보시로 이어지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임에도 굶어 죽는 사람이 없다. 미얀마 인들의 보시행위를 보면 나눔은 물질의 풍요가 아닌, 정신의 풍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미얀마 인들은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가정행사를 절에서 치르거나, 스님이 와서 행사를 주재한다. 그 가운데서 대표적인 것이 결혼식으로, 요즘은 도시의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 자란 젊은 세대들은 서양식 결혼식을 선호하기도 한다.

아직도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절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국민들의 교육도 일정 부분 사원이나 수도원에서 담당하고 있다. 특히 8~9세의 어린이는 지방사찰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기초 교육을 받는 것이 일상적이다. 오랜 군사 독재 하에서 교육이 황폐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문자 해독률이 90%를 넘는 것은 사찰이 운용하는 학교들의 공적이다. 다만 불교의 폐단도 있다. 미얀마 불교 사찰들의 부유함은 어마어마해서 왠만한 대기업들을 능가한다고 한다. 

그래서 승려들의 착복과 더불어 부패는 한국의 일부 대형 기독교 목사들보다 심하다 한다. 이렇게 어려운 미얀마 사람들 피빨고 있는 승려들이 성직자라 할 수 있을까? 승려가 여자들을 거느리고 있는건 일도 아니고 전반적으로 사회지도층에 있기 때문에 국가반역죄와 같은 중죄가 아닌 이상 처벌을 할 수 없다. 이곳에서의 승려는 그냥 사회지도층이 아니라 그저 살아있는 부처인 존재다. 

그래서 승려는 미얀마 국법인 세속법에 저촉받지 않는다 했다. 그러한 배경이 있어 미얀마에서 스님이 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정식 스님이 되려면 꽤 오랫동안 수도원에서 수련해야 하는데 수도승은 정식 승려 인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스님으로 인정도 안한다. 그 대신 수도자가 되려는 경쟁율도 엄청 치열하다 한다. 미얀마는 승려가 세속법에 저촉받지 않고 당당히? 재물을 취득할 수 있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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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의 역사학자 고고학자, 인류학자. 역사, 고고, 인류학적으로 다양하게 조사, 연구하기 위해서 역사, 문화적 체험을 중시하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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