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능욕, 어떤 방어도 불가능한 범죄의 피해자가 된다는 것. 📨

alookso 임유나


루마(필명), 30대 여성.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로서 목소리를 보태면서 동시에 본업에도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N번방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2020년 초, 가담자만 수만 명이라는 믿을 수 없는 뉴스에 공포와 혐오감에 휩싸였던 적이 있었다. “텔레그램을 깔아보고 거기 ‘최근 접속’으로 뜨는 남자는 거르는 게 안전하다”는 말까지 떠돌았다.

범죄행각과 실태를 보며 분노했지만, 몇 주가 지나자 곧 잊게 됐다. 잊고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잘 살았다. 잊었다는 말을 굳이 사용할 필요조차 없던 ’일반인’ 시절의 내 얘기다.

2021년 여름, 텔레그램에 가입했다. 예약하기 어려운 아이맥스 영화 예매 알리미방이 텔레그램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별생각 없이 앱을 깔고 가입했다.

다음 날 오후,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폰 진동 알림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싸한 느낌이 들어 바로 알림을 열어보았다.

“안녕”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익숙한 나의 과거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불특정 다수 남성의 성기로 추정되는 형상들이 바로 밑에 보였다.

내 얼굴 사진 옆에 ‘쫀득보*’라는 문구를 삽입하고 그 앞에서 자위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 여성의 나체 사진과 음란물에 나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 “걸레 OOO(피해자 이름)” “몸 팔려고 학교 자퇴한 변기 지망생” “무료보 허벌**” 등의 문구가 내 사진 옆에 포스터처럼 합성된 사진 등, 순식간에 수십 장의 사진과 영상이 연달아 전송되어 왔다.

그 순간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과 감정이 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휴대폰을 잡은 두 손과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가해자는 내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자, 계속해서 더 심한 종류의 메시지와 사진, 영상들을 전송했다.

“샹O아” “빨리 대답해봐” “내가 누군지 알려줄게” “계속 보고 있는 거 알아“

여전히 반응이 없자 강도는 더 높아졌다. “너 돌리는 방 주소야” 라든지 “자기 섹스 영상” “OOO(피해자 이름) 섹스 영상” 등 나를 도발하려는 듯 메시지를 계속해서 보내왔다.

실제로 방 주소를 보내지는 않았지만 내 사진을 유포한 참가자 42명의 텔레그램 단체대화방 화면 캡처도 여러 장 보냈다. 가해자는 “이름 OOO, 나이 2X이고 자주 애용하던  *받이에요”라며 나를 ‘제보’했고, 가담자들은 “이번 시즌 먹잇감이 저년인가요?” "걸*년이 박아주면 딱 저렇게 웃으면서 싶네요” “이년 *꼴이네여 와ㅋㅋㅋㅋㅋㅋ” 등 수많은 답글을 남기며 호응했다. 위에서 본 여러 남성의 성기 사진과 자위 영상은 이 사람들로부터 온 것 같았다. “OOO(피해자 이름)년 오랜만이네요 ㅋㅋㅋㅋㅋ” 심지어는 내 사진을 여러 번에 걸쳐 반복적으로 제보한 듯한 흔적도 보였다.

메시지가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고, 나는 가장 먼저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은 먼저 112에 신고하고 사건 접수를 할 것을 권했다. 무슨 정신으로 경찰서까지 갔는지, 여성청소년과에서 고소장을 작성하는 동안에도 가해자의 공격은 이어졌다. 점점 더 다양한 사진과 영상, 성희롱 및 모욕 메시지들을 보내며 어떻게든 나의 반응을 끌어내려 하는 듯했다.

“난 누나한테 자주 야톡할거 같아요” “누나가 내 자* 본다는 게 넘 꼴려”

“솔직히 재밌지?? 고딩 자*도 보고” “좀 한마디만 해줘요” “연구하지 마요 어차피 못 잡아” “나 잡을 방법 딱 하나 있어” “답장하면 알려줄게”

본인이 한 짓을 ‘야톡’이라 칭하는 걸 보고 기가 막혔다. 정말로 나를 아는 놈이란 말인가? 펜을 잡은 나의 손은 계속해서 심하게 떨렸다. 난생처음 본 구역질 나는 사진과 문구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떠돌았다. 하지만 내 지인 중에 이런 짓을 할 사람이 대체 누구일지, 생각하는 것 자체가 괴로웠다. 답장해서 나에 대해 아는 것이 더 있는지 물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떤 여지도 주고 싶지 않았다. 힘들지만 계속해서 울리는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며 조용히 캡처를 했다.

마주 앉은 책상 너머로 형사가 “가해자를 특정할 만한 정보를 최대한 작성해라. 그렇지 않으면 아마 잡기 쉽지 않을 거다.”라고 했다.

단서라고는, 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2년 전부터 지금까지 모조리 캡처해서 저장해둔 것으로 보이니 적어도 그맘때부터는 내 번호를 갖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내 이름과 나이를 안다는 것뿐이었다. 사실상 내 번호를 아는 사람이면 다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형사는 또 “원한 관계가 있을 만한 남성이 없냐”고 물었다. 이런 짓을 할 만한 원한 관계라니…. 어디서부터 짚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 있는 수백 명의 이름과 사진을 훑으며 한 명씩 모습을 떠올리다 보니 답답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메시지는 계속 날아왔다.

“진짜 세다.” “너보고 발*됐던 첫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가끔 *치려고 한 거니 너무 걱정하지 마요”

그날부터 문자와 사진들이 생각나 잠을 이루기 어려웠고, 한밤중에도 식은땀에 젖어 깨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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