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약이란] 진통제가 만들어 낸 고통
2022/07/13
By 박상현
아편의 재림
스미스타운은 미국 뉴욕 주 롱아일랜드에 있는 인구 11만 명이 조금 넘는 동네다. 서쪽에 있는 맨해튼으로 출퇴근하기에는 조금 멀고, 롱아일랜드 최고의 부촌 햄튼 수준은 아니지만 바닷가에 접한 그림 같은 집들이 많고, 뉴욕 양키스보다 메츠를 더 응원하는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이 많이 모여 산다. 내가 백인 인구 비율이 95퍼센트가 넘는 이 마을에 익숙한 건 2000년대 중반에 롱아일랜드에 거주하면서 이곳에 있는 한인교회를 다녔기 때문이다. 많은 소규모의 한인교회들이 그렇듯, 내가 다니던 교회도 교인 숫자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미국 교회의 건물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어느 평일 저녁, 교회에서 행사를 마치고 문을 나서는데 평범한 차림의 백인 아주머니가 들어오면서 내게 “여기가 나코틱스 어나니머스가 모이는 교회 맞느냐?”고 물어봤다. 나는 그 교회 건물이 평일에는 알코홀릭스 어나니머스, 즉 익명성을 보장하는 알코올 중독 재활 단체의 모임 장소로 사용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마약 중독 재활 단체인 나코틱스 어나니머스의 모임도 열리는 줄은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미국에서 마약 문제는 대부분 대도시의 도심에 국한된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20세기 후반 미국을 괴롭힌 심각한 마약 문제는 코카인, 그중에서도 크랙이었고, 이는 도심의 쇠락한 슬럼이나 게토에 사는 흑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의 마약 문제는 흔히 가난한 유색 인종, 특히 흑인들의 문제라고 생각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처벌이 답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었다.
여기에서 잠깐 ‘마약’이라고 뭉뚱그려서 표현하는 ‘향정신성 약물’의 정체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마약은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복용할 경우 지각을 왜곡해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감각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환각제, 신경 활동이 촉진되는 각성제, 그리고 반대로 신경 활동이 저하되는 진정제가 그것들이다. 연예인들이 복용했다고 가끔 뉴스가 되는 대마초나 LSD는 환각제이고, 필로폰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메스암페타민이나 엑스터시, 그리고 코카인은 복용할 경우 뇌신경 활동이 촉진되는 각성제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진정제에 해당하는 것이 흔히 진통제로 사용되었던 아편 계열의 약물이다.
서평 전문 계간지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한국에도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서평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탄생했습니다.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자연과학, 역사, 문학, 과학기술사, 철학, 건축학, 언어학, 정치학, 미디어 등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2명의 편집위원이 뜻을 모았습니다.
중요한 책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제대로 짚고, 널리 알려졌지만 내용이 부실한 책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주목받지 못한 책은 발굴해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