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개의 폭력> : 학교폭력 피해와 그 흔적의 나날들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09/05
출처 : 인터넷 서점 알라딘 미리보기 표지 캡처


2021년 배구 선수 ‘이재영, 이다영’ 쌍둥이 자매의 학교폭력 가해 사실이 폭로되면서, 일명 ‘학폭 미투’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상처를 애써 짓누르며 살아왔던 피해자들은 봉인되었던 과거의 침묵을 깨고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말할 수 있는 매체가 다양해졌다는 것도 한몫했다. 피해자들은 대형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가해자의 실명을 거론하고, 피해 경험을 구체적으로 술회했다. 대중들의 반응도 이전과 달랐다. 왕따를 위시한 학교폭력 문제를 피해자 탓으로 돌리지 않고, 그들의 아픔에 공명하고자 마음을 열고 경청했다. 교실 안의 울부짖음이 학교 담벼락을 넘어 구석구석 울려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피해자가 고통을 발화할 수 있다는 것, 듣기 위해 노력하고 연대를 모색한다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제삼자인 시민들이 내뿜는 분노의 방향이 또 다른 가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우려되는 지점들이 있다.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학교폭력 사건처럼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하게 구획되어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진정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고 안전한 교실로 전환하려면, 시시각각 변하는 권력의 무게 추를 기반으로 폭력이 형성되고 양산되는 방식을 고찰해야 한다. 한데 ‘학폭 미투’는 사회 이슈에 머물러 있을 뿐, 2년 넘게 큰 진전이 없다.

가해자가 특정되자마자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어 무차별적으로 악플을 난사하고, 몰지각한 신상 털이에 가담하는 네티즌들을 보고 있노라면, 심연에서부터 의문이 샘솟는다. 정말 다들 한결같이 바르게 살아왔을까? 단 한 번도 방관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동조하지 않고, 늘 피해자의 편에 서서 도와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리석은 인간은 정의의 거울을 든 심판자라고 으스대며 악을 처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실상 그 자신도 악을 내재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욕설, 비난, 신상 정보 유출은 사건의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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