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돌봄과 작업

홈은
홈은 · 15년차 집돌이
2023/03/17
어쩌면 내가 엄마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10명의 이야기에 숨어있을 고통과 좌절이 표지만 봐도 느껴져 책 구입을 앞두고 꽤 오래 망설였다. 분명히 읽으면 좋은 내용일 텐데 결제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돌봄의 기쁨과 슬픔이 골고루 들어있겠지만 슬픔이 내 안에 남아있는 '육아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부채를 건드려 감정이 폭발할 것 같아 조금은 두려웠다. 슬쩍 살펴본 에디터의 노트가 없었다면 구매를 결정하지 못했을 것 같다. 이희영 작가의 '페인트'나 모드 쥘리앵의 '완벽한 아이'를 읽었을 때 들었던 부모로서의 죄책감과는 결이 다르겠지만 다른 종류의 죄책감에 휩싸일 것이 분명할 책을 기어이 구입하고야 말았다. 

미카엘 에스코피에의 '완벽한 아이 팔아요'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위로를 받은 경험이 있다. 세상에 완벽한 아이는 없지만 완벽한 부모도 없다는 당연한 진리를 탯줄을 끊을 당시에는 몰랐었다. 돌봄이 직업이라 오히려 보기 어려운 세상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다른 업에 종사하며 돌봄을 이어가고 있는 엄마들의 이야기가 고통과 슬픔으로 끝나진 않을 것 같았다. 양육 실천을 강제로 행해야 하는 사회에서 버텨낸 엄마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한국의 불가촉천민에 가까운 전업주부의 삶, 선택한 사람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도 진저리 치며 벗어나고 싶어 하는 대우받지 못하는 직업을 괜찮다고 말해주는 목소리를 듣고 기억하고 싶었다. 

돌봄은 가장 좋을 때 빛나는 직업이 아니다. 평소에는 있는 줄도 모르지만 가장 나쁠 때 비난받기 좋은 직업이다. 시중에 나와있는 육아서들을 보라. 얼마나 부모를 옥죄고 있는가. 마르셀 뒤샹의 '샘'이나 뱅크시의 작품이 갖고 있는 아이러니가 예술에만 존재하진 않는다. '때려치워라'라는 내용을 담은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양육가설' (1988)이 또 다른 장르의 육아서가 된 것을 보면 스스로 옥죔을 선택하는 것인지 사회가 종용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부모들이 돌봄이라는 일에 대해 굉장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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