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전도유망한 청년정치인을 ‘이상한 나라‘로 몰아냈을까
2023/01/08
[Review] ‘이상한 나라의 박지현’(박지현, 저상버스)
‘정치인을 키운다’는 말은 ‘배신당함’을 각오하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기대를 그 정치인이 ‘모두’ 채워줄 리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5,000만명의 인구가 살아가고 있고, 나의 주권은 그 5,000만분의 1이다. 정치인은 5,000만명의 바람 중에서 스스로 중요하다 싶은 것을 대의할 것이고, 그가 헤르미온느의 시계를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내가 원하는 것은 우선순위에 모두 포함될 수 없다.
너무 일찍 정치에 관심을 가진 탓일까. 수많은 정치인에게 기대하고 실망하기를 반복했었다. 그러더니 20대 후반부터는 아예 ‘지지정당 없음’을 공공연히 선언했다. 그 순간순간 내 마음에 드는 행보를 보이는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보낼지언정 그를 ‘지지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단순히 경멸이나 혐오는 아니었다. 내가 옳지 않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간다고 해서 그 행보를 결정한 인간 자체를 비하할 이유는 없어서다. 정치인과 시민의 관계는 불가근 불가원이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 잘 하면 잘 한다고 칭찬해주고, 잘못된 길로 가면 지적하면 될 일이지 지나치게 많이 빠져들고, 지나치게 많이 실망하는 건 어쩌면 가장 빠르게 냉소의 길로 빠지는 것은 아니겠는가.
우리는 스스로가 주권자인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이상, 정치적인 인간으로 살아가야만 한다. 정치인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비판하며 키워주기도 하며 힘을 보태줄 수도 있다. 어떤 면에서 권리처럼 보이는 이것은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의무처럼 보이기도 한다. 흥행성이 강한 정치권의 암투를 서사로만 소비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내린다면 정치에 대한 관심은 그 사회의 성숙도를 판단하는 척도가 될 수도 있다.
정계에 데뷔한지 불과 1년을 갓 넘은 정치신인 ‘박지현’은 화제의 인물이다. 비록 정치권에서 은퇴한 지 오래 되어, 스스로의 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