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개발자입니다2] 10. (내가 경험한) 프로그래밍과 글쓰기의 공통점

청자몽
청자몽 · 꾸준한 사람
2023/12/23
프로그래밍과 글쓰기에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국문학 전공이었던 내가 프로그램을 짤 수 있었다. 연대기 스무 번째 이야기 :



커서가 무서웠던 나

또각또각 타이핑할 때, 키 입력하는 느낌이 좋은 기계식 키보드를 사랑한다. 그나마 소리가 덜 난다는 흑축을 선택했다. 한참 열심히 사용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지금은 쉬고 있다. ⓒ청자몽

모니터 화면에 깜박이는 커서.
빈 화면에 커서가 깜박깜박거리는걸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던 때가 있다. 분명 다른 장르인데, 같은 느낌의 영화를 보는듯 했다.

언젠가 학교 과제를 하느라 안 풀리는 글을 쓰고 있었다.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뭐가 이리 안 풀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빈 화면인채로 넋을 놓고 있었다. 그때 깜박이는 커서가 눈에 들어왔다. 깜박깜박.. 깜박깜박.. 이봐 이봐 뭐해? 어서 어서 글을 내놓으란 말이야. 빈 화면에 깜박이는 커서가 무서웠다. 빈 화면인채로 하얗게 밤을 새고 말았다.

프로그래머가 된지 얼마 안 되서 또 그 무서운 커서의 독촉을 경험했다. 입사하고 얼마 안 되서 작은 기능 하나를 만들어 보라는 요청을 받았다. 비전공인데다가, 이해도 잘 못하는 수업을 겨우겨우 들어가며 교육센터를 간신히 6개월 다닌 왕초보 프로그래머였다.

뭐가 뭔지도 잘 모르는데 아웃풋(프로그램)을 내야하다니.. 스스로가 한심했다. 참고가 될만한 두툼한 API책을 옆에 놓고,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막막했다. 모니터를 들여다 보는데, 한숨이 나왔다. 그때 또 빈 화면에 깜박이는 커서가 눈에 들어왔다. 여.. 오랜만. 이번에는 프로그램이야? 뭐해. 코드를 입력해줘. 빨리. 뭐해. 안하고. 커서가 무서웠다. 역시 하얗게 밤을 샜다. 코드 한줄도 입력 못한채로...

생각해보면 뭐라도 일단 쓰거나 입력을 해야했을텐데.. 그 뭐라도 쓰거나 입력하기 전에 용기부터 필요했다. 두려움을 이겨낼 용기 말이다. 그러고보면 프로그래밍과 글쓰기가 묘하게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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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공) 전직 개발자, 이현주입니다./ 한국에서 10년, 미국에서 7년반 프로그래머로 일했습니다./ 현재는 집안 잔업과 육아를 담당하며, 마침표 같은 쉼표 기간을 살아갑니다./ 일상과 경험을 글로 나누며 조금씩 성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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