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군대 이야기 (5) 사회에서는 안그랬는데, 왜 이러지?
군에 입대하여 5개월여 교육 훈련기간 동안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대부분 입대 전에 살던 곳이나 했던 일이 크게 달라서 군대가 아니었더라면 평생 내내 서로 만나야할 일이 없었을 만큼 나와는 무관한 사람들이었다.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20대 초반 나이의 한국 청년이라는 것이었다.
교육 과목 자체도 고등학교나 대학 시절 교련 시간에 받았던 일부 기초 훈련 과목 외에는 대부분 생소한 내용들이었다. 더욱이나 내가 병기학교에서 교육받은 기계공작 교육은 입체 도면을 보고 공작기계를 사용하여 쇠를 깎아서 같은 치수의 입체물을 만들어내는 훈련이었다. 내가 이런 선반 교육을 받게 되리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어떤 경위로 내가 병기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내가 병기학교를 가게된 것이 우연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나보다 1년 앞서 자원 입대한 형이 최전방 대성산에 배치되어 손발에 동상이 들 정도로 고생하는 모습을 면회 가서 보았던 아버지께서는 강제 징집된 나는 형보다 훨씬 더 힘든 곳으로 배치될 것이라는 우려로 여기저기 지인을 통하여 부탁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보병병과가 아닌 병기병과라는 특과를 받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당초 의도와 달리 나는 그곳에서 군대 생활 중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주변의 어른들이 군대가 얼마나 험한 곳인지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자랐었지만, 비교적 순탄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입대했던 내 눈에 보이는 군대는 험할 뿐 아니라 강압적이며 폭력적이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종하며 견디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내하였다.
훈련소에서 교관들의 모든 질문이 “그래? 안 그래?“의 단답식이라 대답도 ”네,그렇습니다!이거나 ”아니요. 안그렇습니다.“ 중 하나를 택하여야했는데,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내 생각의 폭을 억지로라도 축소하고 단순화시켜야했다. 그 후 이어진 병기학교에서의 생활은 마치 노예 생활 같았다고 축약하여 말할 수 있겠다.
운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