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가 쓰고 싶을 때 나는 라면물을 올린다6]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라는 형벌을 받았다
세상의 모든 일이란 게 종국에 하잘것없지. 자신의 열정과 욕망에 귀 기울이지 않고, 돈이나 명예 혹은 다른 무엇인가를 거머쥐려고 애쓰는 타의의 삶을 사는 건 언제나 바보나 하는 짓이지.
Alles in der Welt läuft doch auf eine Lumperei hinaus, und ein Mensch, der um anderer willen, ohne daß es seine eigene Leidenschaft, sein eigenes Bedürfnis ist, sich um Geld oder Ehre oder sonst was abarbeitet, ist immer ein Tor.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베르테르는 친구를 통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살기를 바란다는 어머니의 바람을 전해 듣는다. 원문은 ‘Aktivität’로 이 단어 자체는 적극성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문맥으로는 (어머니가 베르테르에게 바라기를) 베르테르가 무엇이라도 했으면 한다는 전언이다. 베르테르가 그러면 나는 아무 일 않고 지낸다는 뜻이냐고 반박한 걸로 보아 남들이 보기에 무위도식이지만, 자신은 무엇인가(의미 있는 것)를 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베르테르는 타의에 의한 삶에 질색한다. 자신의 열정(Leidenschaft)과 욕망(Bedürfnis)이 배제된 채 통념을 추수하며 사는 삶을 거부한다. 완두콩을 세나 편두콩을 세나 콩을 세는 건 매일반이고, 세상의 모든 일이라는 게 종국엔 다 부질없다고 한다면,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는 어떻게 사느냐 하는 삶의 과정이고 그 과정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드는 기준은 자신의 열정과 욕망이어야 한다는 게 베르테르의 논리이다.
질풍노도
완두콩을 세나 편두콩을 세나 콩을 세는 건 매한가지라면 제 열정대로 살아야 한다는 베르테르의 얘기가 틀리지 않아 보인다. 사실 그것 말고 답이 없다. 현실에서 개인은, 외부의 기준 즉 거의 모든 구성원에게 매한가지로 주어지는 사회적 강제에 따른 무엇인가를 거머쥐려고 사는 삶...
ESG연구소장으로 (사)ESG코리아 철학대표, 청년협동조합지속가능바람 이사장으로 활동한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ㆍ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이고,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을 지냈다. 약 40권의 저역서가 있다.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