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부터 바이에른 왕국 육군사관학교에서 전사 강의를 맡던 카를 하우스호퍼는 3년 뒤 겨울 일본 육군을 연구하라는 지시를 받고 동아시아를 순방하게 되었다. 지중해와 홍해, 인도양을 거쳐 일본으로 향하면서 그는 각지에 산재된 영국의 식민지와 해군 기지를 보고 해양 세력의 힘을 실감했으며 일본에 도착한 후 일본 각지와 중국 여러 지역, 그리고 한국까지 여행했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어는 물론, 중국어와 한국어까지 익혔다. 하우스호퍼는 힌두교나 불교 경전, 그리고 아리안 민족이 많이 사는 인도 북부와 이란에 대한 지식도 밝았으며 독일로 귀국하는 길에는 블라디보스토크와 시베리아를 경유해 지리적 견문까지 넓혔다. 이때 여정을 떠났을 때와 대비되게 대륙 세력의 힘을 느꼈다. 그 후 1912년 건강 악화로 제대한 뒤 지리학 연구에 뜻을 두고 뮌헨 대학교에 입학해 1914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그가 쓴 저서이자 일본의 팽창 과정, 기본 방향 및 팽창에 대한 장애 요인을 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는 <대일본>은 1908년 일본 육군 연구를 위해 동아시아로 순방을 떠나면서 얻은 경험이 기반이 되었다.
하우스호퍼는 일본 체재 중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군사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일본이 당대 독일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메이지 시대 지배 계층인 사무라이는 프로이센 지배 계급이었던 융커처럼 정치적 자유주의나 공화주의를 거부하고 군주제를 도입했다. 프로이센 군사 시스템을 연구하고 이를 본받아 일본 육군을 근대화시켰던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하우스호퍼의 이상적 모델이 되었다. 또 그는 야마가타의 사무라이 윤리와 현대 교육의 융합이 가져온 긍정적 효과에 주목했다. 1913년의 저작인 <대일본: 대일본제국의 군사력, 세계 지위 및 장래에 관한 고찰>에서 하우스호퍼는 전쟁을 민족의 생존권에 대한 마지막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