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아들의 교회 탈출기 (9)

이화경
이화경 · 프리랜서 작가
2024/04/15
11. 반미가 대세였던 시절, 카투사로 산다는 것
 
가장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들 때 고등학교에 다시 들어가는 꿈을 꾼다고 앞서 이야기했다. 반면, 가장 편안하거나 아늑한 상태에 있을 때 나는 군대 시절 꿈을 꾼다. 일병 때까지 미군들과 2인 1실 막사를 쓰다가 상병 되고 부턴 1인실 막사가 제공됐다. 막사엔 뭐든 갖다 놓을 수 있었다. 노트북은 기본이고, DVD 플레이어나 오디오, 플레이 스테이션 등등 아무런 제약 없이 뭐든 갖다 놓고 즐길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친지나 친구, 애인도 언제든 부대로 불러들일 수 있었다. 게이트에서 인적사항만 적으면 됐다. A급 수준의 체력 단련 시설에, 패밀리 레스토랑에, 펍에, 극장, 볼링장까지 부대 내에 거의 없는 게 없었기 때문에 안에만 있어도 원하는 건 다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답답하면 외출을 하거나 외박을 했다. 

물론 카투사도 군대는 군대인지라 어려움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같이 일하는 미군들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선임, 후임들과 이러저러한 갈등도 있었다. 더욱이 그 시절은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9.11이 터진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분위기가 삼엄했고, 미군에 대한 국내 여론도 최악으로 치닫던 시기였다. 2002년 여름, 미군 장갑차에 치여 여중생 두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재판을 내가 속한 동두천 캠프 케이시에서 했다. 이등병으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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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의 길을 포기하고 작가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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