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 전쟁'-일본군의 총공세, 외력에 힘입은 승리
2024/11/10
[5] 망각된 동아시아 최악의 전쟁 ■일본군의 총공세
장제스는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보내 "일본군이 조만간 공세에 나설 것이고 중국은 일본군의 강력한 무력 앞에 내버려질 것"이라고 밝혔다. 미군과 영국군은 장제스의 예측에 콧방귀를 뀌었다. 일본군이 방어에 집중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장제스의 예측은 신경과민으로 취급받았고 서방의 예측이 좀 더 합리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일본군은 버마와 중국 본토에 대한 총공세를 단행하기로 결정했다. 뜻밖의 초강수였다. '이치고'라고 명명된 군사작전은 중국 중부 지역을 관통하는 작전으로써, 약 50만 명에 달하는 일본군이 철도망을 따라 중부에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이르는 교통로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중부 지역에 있는 미군 비행장들을 파괴하는 것도 목표로 삼았다. '우고'라고 명명된 군사작전은 약 10만 명의 일본군이 버마 북부에서 인도로 진격하는 것이었다. 일본군의 이 같은 결정의 기저에는 '도박 심리'가 깔려 있었다. 전황이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오히려 이때 과감한 작전을 통해 허를 찌른다면 미국과 협상의 여지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1944년 4월 일본군은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엄청난 규모와 기세로 허난성을 공격했다. 중국군은 허겁지겁 방어에 나섰지만 맹렬하게 쳐들어오는 일본군 앞에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장제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중국군 구성원들은 일본군의 총공세를 예측하지 못했다.) 중국군은 통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부대 간에 원활한 의사소통도 이뤄지지 않아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였다. 일본군뿐만 아니라 허난성에 있는 일부 주민들도 중국군을 겨냥한 공격에 가세했다. 이들은 세금 납부 등에 있어 자국 군대가 보인 착취에 가까운 행위에 불만이 크게 누적된 상태...
저서로 [정변의 역사], [암살의 역사], [숙청의 역사-세계사편], [숙청의 역사-한국사편]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