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말, 난파된 정치 ③ | 표류자들이 사는 세상

최재영
최재영 · 정치의 한복판에서 철학하기
2023/01/16
말하기는 대표적인 선택 행위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사전과 같은 랑그가 있습니다. 말문을 열 때, 우리는 랑그에서 적절한 단어들을 선택해 내뱉습니다. 물론 첫 머리만 고르고 나머지는 습관처럼 연상해내지만요. 말하기의 모든 과정이 완전히 선택적인 것은 아니지만, 선택이 말하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내뱉을 단어를 선택했다는 건, 그 외의 나머지 말들을 입에 올리지 않겠다고 선택한 것과 같으니까요. 인간은 한번에 두 가지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듣기는 어떨까요? 듣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흘려듣기(hearing)과 경청(listening)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수많은 소음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 모든 소리를 우리는 실제로 듣는다 할 수 있습니다. 흘려듣기는 음파가 고막을 때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경청은 소리와 잡소리를, 말과 헛소리를 구분합니다. 흘려듣기는 아무런 선택도 수반하지 않지만, 경청은 적극적인 선택작용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1915년에 출간된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에 실린 유명한 그림
특히,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사람이 경청하는 데 애를 먹는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압니다. 외국어가 대표적입니다. 외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외국사람이 하는 말은 소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외국어를 내뱉을 줄 모르는 사람은 들을 줄도 모릅니다. 우리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준 높은 언어는 지적인 언어습관을 가진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세련된 단어와 정치한 구조, 풍부한 인용과 은밀히 녹인 코드로 상대에게 말을 걸어도, 듣는 사람이 말을 단지 생활을 영위하는 도구 중의 하나로만 여긴다면, 그 말은 헛소리에 가깝게 들릴 겁니다. 경청은 흘려들은 음파를 내 의식 안에 의미를 가진 말로 재구성하는 과정입니다. 그 해독과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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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정치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이제는 의회에서 밥벌이하며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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