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의 고고인류학 293편 - 알바니아계 민족주의자들과 북마케도니아의 갈등 문제

알렉세이 정
알렉세이 정 · 역사학, 고고학, 인류학 연구교수
2024/06/15
발칸반도의 역사를 관찰해 볼 때, 현재 북마케도니아 현실에 있어 어려운 문제는 그리스와의 국호 논란과 영토 분쟁, 서부 마케도니아에 거주하는 알바니아계 주민들과 갈등 문제에 있다. 이는 실질적으로 볼 때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그리스와의 갈등으로 인해 야기된 대외적인 문제로 볼 때, 대내적으로 북마케도니아 정부의 소수 민족을 향한 관용과 포용 정책이 매우 경직스러운 부분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사진 : 서부 마케도니아에서 알바니아계 주민들의 독립 요구 시위, 출처 : Balkan Insight, By Fatjona Mejdini, Sinisa Jakov Marusic and Fatjona Mejdini

실제로 오랜 기간 동안 이어진 북마케도니아에 대한 국제 사회에서 독립 국가로 인정하는 등의 논쟁 및 민족 정체성을 둘러싼 불안정성은 북마케도니아 정부로 하여금, 자국 내 알바니아계 민족이 주장하고 있던 자치권 요구, 더 나아가 독립 국가로 인정하는 요구를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따라서 북마케도니아의 불안정성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발칸반도에서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공화국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세르비아가 1991년 9월 유고 내전과 1992년 3월부터 보스니아 내전을 발생시켜 그 위기감이 한층 더 고조시켰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는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서의 민족 간 충돌의 여파도 존재하고 있어 알바니아계와의 분쟁이 북마케도니아 등 다른 지역들로 확산될 것을 우려하며 유고 내전을 비롯한 각종 발칸 분쟁들을 주시해 왔었다. 알바니아 민족주의자들은 1991년 3월 북마케도니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직후부터 계속하여 알바니아계가 다수 거주하고 있는 서부 마케도니아 지역을 중심으로 자치권 및 독립을 요구해 왔었다. 

여기 독립 마케도니아를 이끌며 처음 대통령에 오른 키로 글리고로프(Kiro Gligorov, 1917~2012)는 국제 사회의 도움 없이는 자체적인 국가의 존립이 어렵다는 현실적인 한계와 더불어 전체 약 200만 명의 인구 중 25%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알바니아계의 존재를 부정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발칸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알바니아계와의 평화로운 공존이 필요하다는 국제 사회의 요구를 거부하기가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취임 초기 알바니아계와의 공존을 위해 부수상을 비롯한 2개의 장관직에 알바니아계를 임명했다. 

그러나 1992년 1월 알바니아계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에 자체 투표를 통해 서부 마케도니아 자치국가 수립을 선포하게 된다. 이어 1993년 11월 북마케도니아 정부 전복을 목표로 일리리다(Ilirida) 자치 공화국 건설을 위해 알바니아 무장조직(AAA : All Albanian Army)을 결성하려다가 정부에 의해 발각되었고, 1995년에는 알바니아 비밀단체가 키로 글리고로프 대통령을 암살하려다가 미수에 그치는 등 여전히 갈등과 혼란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1998년 이후로 확대되던 코소보 내 민족 갈등이 나토와 세르비아 간의 전쟁으로 이어지고 이웃하고 있던 코소보로부터 대규모 알바니아 난민 진입이 시도되었다. 

그러자 북마케도니아 정부와 서부 마케도니아 알바니아계는 심각한 위기 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 2000년에 들어 코소보로부터 마케도니아 알바니아계에 대한 무기 유입이 확대되었고 2001년 3월 초 테토보(Tetovo)를 수도로 정한 알바니아 민족 해방군(NLA : The National Liberation Army)들에 의해 마케도니아 내전이 발생하게 된다. 당시 마케도니아 정부군은 알바니아 해방군에 비해 무기와 군사 조직 면에서 매우 열악하고 자체 진압 능력이 부족했다. 

무엇보다도 국제 사회는 내전으로 인해 마케도니아가 붕괴될 경우, 전략적인 요충지인 서부 마케도니아 지역을 중심으로 과거 제 1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으로 불리는 제 1, 2차 발칸전쟁과 같이 전쟁이 발칸 유럽 전체로 확대되는 것을 우려했다. 따라서 이는 미국과 나토 및 러시아의 신속한 군사적 개입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한 결과로 인해 2001년 7월 5일 양측은 마침내 서부 마케도니아에 대한 자치권 논의와 알바니아 반군의 무장 해제라는 국제 사회의 중재안인 오흐리드 합의안(Ohrid Agreement)을 받아들임으로써 내전이 완전히 종식되게 된다. 

실제로 전쟁이 끝난지 20년이 지난 국제 사회에서는 마케도니아의 문제를 둘러싸고 발칸반도의 영구적인 평화를 정착할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시험대로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과거 역사를 볼 때 마케도니아가 항상 발칸 유럽 분쟁의 주요 핵심 지역 중에 하나였고, 전략적 요충지인 마케도니아 지역을 둘러싼 치열한 영토 전쟁이 유럽 열강들의 군사적 개입을 불러옴으로 인해 대규모 전쟁으로 확대된 것에서 비롯된 우려라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국제 사회는 마케도니아 내에서 민족 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이로 인한 내전이 장기전으로 이어질 경우 이는 마케도니아 국가 존립의 위기가 형성될 것이고, 더 나아가 오랜 동안 발칸 남부 지역에 대해 종주권을 주장해 왔던 발칸 유럽 내 주변 국가들,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등의 군사적 야망을 부추겨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판단한다는 점에서 마케도니아의 위기 문제는 국제 사회에서 큰 관심들 중 하나로 대두되고 있다 할 것이다. 

물론 마케도니아에 대한 그리스의 반대와 여러 외교적인 갈등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흑해를 통한 러시아의 정치, 경제적 팽창 전략을 견제하고 저지하기 위해서, 현재 발칸반도의 남쪽에 자리하면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는 마케도니아를 친미 전략 국가로 설정해 놓은 것으로 보여 진다. 실제로 미국은 냉전 시절이 종식된 이후로, 오랜 기간 동안 유럽과 러시아의 영향력 하에 나뉘어져 있었던 발칸 지역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따라서 대규모 경제 지원과 미군 주둔을 위한 군사 시설을 확보하고 전폭적인 외교 지원 등을 통해 마케도니아에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계속해서 추진해 왔었다. 

이어 코소보 회랑과 연결해 세르비아의 육로 진출을 억제하고 러시아의 해상활동과 발칸 및 남동부 유럽 국가들과의 상호 연계성을 파괴하려는 전략을 중점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미국의 이와 같은 전략은, 과거의 역사 속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자국의 이해득실에 따라 마케도니아가 이용되고 버려지는 역사적인 악순환의 반복 과정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는 비판을 함께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실제로 근대 시대 이후로 코소보-마케도니아 지역은 지속적으로 러시아를 비롯해 서구 열강들의 첨예한 국제 전략의 핵심 지역으로 위치하여 왔다. 

따라서 강대국들의 지속적인 개입과 간섭으로 인하여 마케도니아 문제를 둘러싼 진정한 해결책들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강대국들은 매번 자신들의 전략적 이익에 따라 마케도니아가 주변의 어느 국가나 민족에게 완전히 편입되는 것을 방해해 왔으며, 결과적으로 제 1, 2차 발칸전쟁과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강대국들의 역학구도에 따른 영토, 민족적인 분열과 합병은 수없이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현재 그리스와의 협정으로 나라 이름이 북마케도니아로 바뀐 마케도니아는 EU 후보국으로써 EU 가입을 국가의 최우선 정책 목표로 설정해 놓고 있다. 

이와 같은 EU 가입을 위해 EU 회원국들이 요구하는 여러 경제 정책 및 사회 정책 등이 추진되고 있으며, 이러한 와중에 여러 어려움 및 사회적 마찰에 부딪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2013년 7월 EU 가입을 어렵게나마 성공한 크로아티아의 경우와, EU 가입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지만 그 가능성이 멀어 보이는 세르비아의 경우 등의 경우로 볼 때 북마케도니아가 대내적인 민족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실천의 의지와 그 가능성을 국제 사회에 보여주지 못한다면 북마케도니아의 EU 가입은 요원한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북마케도니아 정부의 EU 가입에 대한 애착과 선전 등이 현재 여러 대내외적인 갈등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고생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잠시나마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게 해주는 것에  그칠 것인지, 혹은 그와 같은 갈등들을 이겨내고 EU에 가입함으로써 경제적 희망을 갖게 해줄 지는 마케도니아계와 알바니아계간의 평화로운 공존에 따라 달려있다고 할 수 있는데 아마 이것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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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의 역사학자 고고학자, 인류학자. 역사, 고고, 인류학적으로 다양하게 조사, 연구하기 위해서 역사, 문화적 체험을 중시하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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