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에는 총이 있다

퇴치1
퇴치1 · 주로 애니메이션
2023/07/22
영화 <중경> 리뷰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1.
북경어 강사인 '쑤이'는 중경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말이 없다. 쑤이 역시 강의할 때를 제외하면 어딘가 우울한 얼굴을 띤 채 입을 열지 않는다. 한국에서 온 수강생 '김광철'과 술잔을 기울일 때는 한결 나아진 듯하지만, 그와의 관계에서 어떠한 새로운 일이 일어나진 않는다. 어느 날, 아버지가 엮인 불미스러운 일로 경찰서에 가게 된 그녀는 꼼짝없이 벌금 3천 위안을 물게 생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경관 '왕위'의 도움으로 곤경을 벗게 되지만, 왕위는 쑤이에게 전화번호를 요구한다.

장률 감독의 2007년 작 <중경>은 기묘한 성적 긴장감으로 넘실대는 영화다. 영화는 그런 징조를 스멀스멀 흘리다가, 어느 시점부터 폭발적으로 에너지를 분출하는 데 이른다. 물론 <중경>은 포르노그래피가 아니며, 에로티시즘을 전면에 세우는 영화가 아니다. 인간의 원본능을 논하는 영화라고 볼 수도 없다. <중경>은 잔여물에 관한 영화다. 어떠한 강한 힘이 가해졌을 때, 필연적으로 그 힘에 역행하는 기제가 돌출하기 마련이다. 이때 반응하는 힘, 그와 함께 삐져나오는 불출물에 대한 영화, 그것이 <중경>의 요체라 하겠다. 영화 전반에 걸쳐 흐르는 에로틱하고 폐퇴한 기류는, 이를테면 작용에 대한 반작용이라 할 수 있다. 시대, 그리고 장소라는 작용에 대응하는 리비도란 반작용.


2.
<중경>은 흡사 잘 다듬어진 건축물 같은 영화다. 깔끔하게 마감된 구조물들이 차곡히 쌓여, 작가의 목적에 가장 알맞은 형태로 축조된 건축물. 여기서 구조물은 바로 씬(scene)이다. 한 가지 예시. 세 가지 씬. 영화는 쑤이의 강의로 포문을 연다. 이어지는 첫 번째 장면, 쑤이는 퇴근길 버스에 몸을 누인다. 차창 밖으론 웬 남자가 달려가고 있다. 그 뒤를 쫓는 두 명의 남자. 오래지 않아 도망가던 남자를 붙잡은 2인조는 그 자리에서 남자를 총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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