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7월 9일 광장의 탄생
2023/07/09
1987년 7월 9일 대한민국 광장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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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광장의 역사가 없었다. 무슨 기념일이든, 모모한 날이든 엄숙한 단상 앞에 열지은 의자들의 집합이 있었을 뿐이고, 고유의 명절에 남녀노소 모여 춤추고 노래하며 즐겼다는 동이족의 문화는 오랫 동안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적어도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그 뜻을 나누고 한 목소리로 노래하며 하나가 되어가는 광장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바로 1987년 7월 9일 그 광장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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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9일 6.10 항쟁의 불이 당겨지기 전날, 연세대 시위에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진 이한열은 그로부터 한 달을 더 살았다. 그 친구, 선후배들이 전두환 정권과 사생결단을 내던 한 달이었다. 이한열은 무의식 상태에서나마 그 모든 것과 함께 한 후 죽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의 장례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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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교정에서 올려진 그의 영결식에서 문익환 목사는 잊혀지지 않는 명연설을 한다. 그것은 유려한 문장과 유창한 달변으로 구성된 연설이 아니었다. 그저 호명이었다. 이름들의 나열이었다. 아니 이름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외침을 들으며 사람들은 가슴에서 끌어올려지는 가래같은 울음을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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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광장의 역사가 없었다. 무슨 기념일이든, 모모한 날이든 엄숙한 단상 앞에 열지은 의자들의 집합이 있었을 뿐이고, 고유의 명절에 남녀노소 모여 춤추고 노래하며 즐겼다는 동이족의 문화는 오랫 동안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적어도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그 뜻을 나누고 한 목소리로 노래하며 하나가 되어가는 광장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바로 1987년 7월 9일 그 광장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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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9일 6.10 항쟁의 불이 당겨지기 전날, 연세대 시위에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진 이한열은 그로부터 한 달을 더 살았다. 그 친구, 선후배들이 전두환 정권과 사생결단을 내던 한 달이었다. 이한열은 무의식 상태에서나마 그 모든 것과 함께 한 후 죽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의 장례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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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교정에서 올려진 그의 영결식에서 문익환 목사는 잊혀지지 않는 명연설을 한다. 그것은 유려한 문장과 유창한 달변으로 구성된 연설이 아니었다. 그저 호명이었다. 이름들의 나열이었다. 아니 이름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외침을 들으며 사람들은 가슴에서 끌어올려지는 가래같은 울음을 터뜨린다....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반복 민주주의는 완성태가 아니라 항상 과정이니까요......
맞습니다
목숨을 바쳐 이룬 민주주의죠
지금의 민주주의를 원하지는 않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반복 민주주의는 완성태가 아니라 항상 과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