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이 나를 울게 하리라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4/04/10


초등학교 시절에 먹는 일로 마음고생을 했다. 당시 학교에선 ‘잔반 없애기’라는 해괴한 운동을 벌이고 있었고, 나는 싫어하는 음식은 도통 목으로 넘어가지 않는 기괴한 증상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적 선호에 불과한 편식이 육체에도 영향을 준 셈인데, 고작 밥이 넘어가지 않는 증상으로 특별한 진단을 받아서 교사의 양해를 구할 일은 또 아니었으므로, 혹은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상상도 해본 적이 없으므로, 나는 점심 시간 내내 먹기 싫은 반찬들을 질겅이며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친구들이 죄다 30분 만에 식사를 마치고 운동장으로 뛰어나갈 동안 나는 나물 따위가 입안에서 그 음식 본연의 성질을 잃고 죽이 될 때까지 씹어 억지로 목으로 넘겨야 했던 것이다. 덕분에 되새김질 하냐는 소리를 천 번은 들은 것 같다.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오후의 맑은 햇살이 흘러드는 교실에 앉아 고독과 고통이라는 것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감정의 흐름에 빠진 채 밥을 먹던 광경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먹고 보란듯이 매번 토해버리는 게 나았던 게 아닐까 싶은데, 어릴 때는 그렇게 마음이 모질지 못했던 터라 실제로 잘못 먹으면 구역질이 났던 미역 정도만 친구에게 뒷돈을 찔러주고 대신 먹어달라고 하거나, 우유팩에 조금씩 넣어서 버리거나, 입안에 숨겨서 화장실에 뱉었다. 대리 식사 청부와 음식물 쓰레기 밀반출이라니, 무엇을 위해 그런 희생을 치러야 했던 것일까? 음식물 쓰레기를 애들 뱃속에 버리면 돈이 굳겠다는 누군가의 발상 때문에?

아무튼 잔반이 나오지 않게 음식을 모조리 먹이자는 발상은 군대에서도 하지 않는 정신나간 짓이었다. 영양학적으로 계산된 식단을 남김 없이 다 먹인다는 건 영양학적으로나 합리적이지, 정신건강적 차원에선 그냥 고문일 따름이다. 인간이 빵만으로 살 수 없듯이 아이는 필수영양소만으로 자라지 않는다. 균형은 일단 미뤄두고 먹고 싶은 것을 잘 먹는 게 성장의 지름길이 아닐까? 아마 나도 그때 먹고 싶은 음식을 실컷 잘 먹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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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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