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자천하지대본 : 귀농의 환상

박하
박하 인증된 계정 · 배낭여행자
2023/02/01

자그마치 20년. 나의 농사 경력이다. 많지 않은 나이에 무슨 농사 경력을 따지느냐고 의아해할 사람도 있으나, 소일거리일지라도 일곱이 되기 직전부터 집안의 농사일을 도왔으니 햇수로는 그렇다. 농사꾼 집안에서 자란다는 의미는 뿌리고 걷는 세상의 이치를 일찍이 깨닫는단 말과 같다. 여기 정말 대단한 경력을 자랑하는 농업 종사자 혹은 농업에 대한 학문적 소양을 지닌 지식인이 글을 읽고 코웃음을 칠지 모르는 일이어도 원래 삶이란 전문지식보다 소위 ‘짬’이라 불리우는 날 것의 경험을 쳐 주기도 하지 않는가.

식물은 지식으로 키우기 어려운 것이다. 행여 타고난 재능을 가진 자가 식물을 잘 기른다는 자신감을 믿는 채라도, 온갖 변수가 도사리는 ‘농사’에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실패한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오랜 세월 실패해 온 사람들이다. 실패할 확률을 줄여나갈 뿐,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어린 시절 수확철이 끝날 무렵 사물놀이패를 보았을 때 동네 어른들이 든 깃발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말린 사과. 몽골, 고비 (2022)


농자천하지대본
‘천하의 가장 큰 근본은 농사다’ 뜻을 풀이하면 이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짓는 나의 모든 주변인들이 부유하진 않았다. 옆집 개똥이네, 앞집 철수네, 뒷집 미영이네. 모두가 가난하진 않지만 잘 사는 것 또한 아닌 삶을 살고 있었다. 솔직히 우리 집은 가난했다. IMF로 인해 나의 아비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으로 도망왔을 뿐 술에 도취하여 무너진 삶을 살았다. 정신을 차린 건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아니, 정신을 차렸다기보다는 제대로 내몰린 게 맞았다.

5년을 폭삭 망했다. 벼를, 사과를, 감을, 자두를, 복숭아를, 콩을, 고추를, 참깨를, 호두를. 그리고 포도를. 온갖 것을 손대다가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 한 사람이 됐다. 내가 살던 곳은 포도가 유명한 산지로, 거의 대부분의 주민이 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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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 저 곳을 떠돌며 살고 있습니다. 아직 어느 곳에도 주소지가 없습니다. <아무렇지 않으려는 마음>, <워크 앤 프리> 두 권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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